솔직히 나는 자연과 친해본 적이 별로 없다. 어릴 때는 기회와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고 어른이 된 지금은 시간과 여유, 돈이 없다. 그러던 중, 지난 가을 학생들과 함께 산에 갈 기회가 생겼고, 오랜만의 산행을 통해, 「산을 직접 타보지 않고서는 산에 갔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가 오른 산은 광주 내려오는 길에 늘 보아왔던 산이고, 언제 봐도 아름답고 멋있어서, 보는 이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던 그런 산이었다. 그러나 산행을 통해, 지금껏 내게 익숙해온 그 아름다움은 추상으로서의 멋일 뿐, 살아있는 것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산을 어렵사리 오르고 난 후에 다시 그 길에서 본 산은 이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살아있는 너」로서의 산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그 산을 「발견」하고 구체적인 관계에 들게 된 것이다. 욥은 하느님을 알아왔지만, 바닥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기 전까지는 그저 「소문에 의해 전해진 하느님」을 믿어왔다. 당연히 그런 하느님은 살아있는 구원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구체적 체험을 통해 각인된 하느님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기억으로 실존하게 된다.
욥기의 결론부분 (42, 7~17)
우리는 지금까지 욥기의 본론 부분을 살펴보았다. 「세 친구들의 등장과 대화」로 시작된 본론은 「엘리후와의 대화」, 「하느님의 등장」 순으로 전개되었고, 그 내용은 모두 운문형식을 띄고있었다. 긴 여정을 거쳐 마침내 폭풍우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게되면서 욥은 자신이 겪은 고통의 원인을 깨닫게 되고, 이 모두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기나긴 고통의 바닥을 보게된 것이었고, 이로써 욥기의 결말 부분이 도입된다. 결말은 시작할 때(서론)의 문체였던 「산문」이 다시 도용된다. 운문인 본론과는 다른, 분명한 구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의 내용(욥의 회복)
욥이 자신의 착오를 깨닫게 되자(42, 6) 지금까지의 고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그는 이전에 받았던 축복보다 훨씬 큰 축복을 받게된다. 언젠가 이 지면을 통해 백설공주의 사과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 작은 조각 때문에 찾아온 죽음이 아주 사소한 계기나 충격에 의해 쉽고도 간단하게 풀릴 수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갑자기 머리가 좋아졌다는 얘기이다. 믿지 못할 얘기지만 나는 그 행운을 터무니없는 요행으로 보지 않는다. 죽은 것 같은 재능이라 할 지라도,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능력과 생명으로 충분히 회복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소함 속에 녹아있던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욥기의 결론에 제시된 하느님의 보상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1) 친구들에 대한 심판(42, 7~9)과 2) 욥의 회복(42, 10~17)이다. 하느님은 욥의 고통자체를 실존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원리나 공식(신명기적 인과율)에 맞춰 설복시키려했던 친구들에게 경고와 심판을 내리신다.
이론과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요, 그 사람이 가지는 존엄한 가치임을 재차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이어 하느님은 욥에게 이전에 소유했던 것의 갑절에 해당되는 보화와 자녀 축복을 내리신다. 이야기는 욥이 늦게까지 수를 다하며 살았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바닥에서 만난 것들
바닥까지 가지 않고서는 결코 되돌아올 수 없다. 설사 중간에 어영부영 해서 돌아왔다 하더라도 그건 돌아왔다고 믿고 싶은 마음의 반영일 뿐, 나는 여전히 잘못된 채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미에서 삶은 공평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내면의 바닥을 보아야하고, 거기에서 만난 하느님의 간절한 사랑을 통해 반등할 때 진정한 삶의 가치와 정체성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산행은 내게 소중한 진실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 이후로는 단 한번도 산에 가질 못했다. 여전히 시간과 돈이 없어서였고, 산행 후 며칠을 골병든 채 지내야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소중한 체험은 한번으로 족하다는 간사한 영합도 한몫 했다. 새해에는 운동 좀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운동에 자존심 걸 필요가 있을까를 고민하며 금새 게으름과 타협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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