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띠노 수도회가 아우구스티노의 정신과 은수적 전통을 따르며 지니게 된 영성 중에는 성모신심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수도회가 성모마리아를 공경하며 사용한 가장 오래된 호칭은 「은총의 성모님(Our Lady of Grace, 15C)」이다. 「도움의 성모님(Our Lady of Help)」 도 또 다른 오래된 성모님 호칭인데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Our Lady of Perpetual Help)」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위로의 성모님(Our Lady of Consolation)」 호칭은 볼로냐에 있던 같은 이름의 평신도 단체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우구스티노가 400년에 집필한 수도생활에 관한 규칙서, 「아우구스티노 규칙서」다.
이 규칙서는 서방 세계의 가장 오래된 수도 규칙서로 알려져 있다. 내용의 영적인 풍부함으로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도 중요성을 인정받으며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초석이 되었으며 「체사리오 규칙서」 「베네딕도 규칙서」 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11세기 유럽 수도원 개혁과 대성당 참사회에서는 기초로 활용됐고 파리에 있는 성 빅토르 대수도원과 로벨또 수도회(Canons Regular of Premontre)의 법규로, 라테란 공의회의 교회법에도 인용됐다.
이 규칙서에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하느님과의 친교,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 사도적 가난과 헌신, 봉사와 친절의 마음 등이 반영돼 있고 철저하게 성서에 바탕을 두면서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영위되어야 하는 수도생활의 주된 골자들을 서술하고 있다.
16세기에 시작된 신대륙 탐험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 선교사들을 파견했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선교지역을 확대, 중국을 비롯 라틴 아메리카와 북아프리카 지방 선교를 활성화했다.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한국 진출은 1983년 당시 인천교구장 나 굴리엘모 주교의 요청으로 추진됐다. 수도회의 아시아 진출은 이미 400여년 전 부터 필리핀 일본 중국 등을 통해 이루어져 왔지만, 한국 주교가 공식 요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후 1985년 9월 호주 관구, 영국 스코틀랜드 관구에서 각 두 명씩의 사제가 서울에 도착했고 이후 호주에서 한 명, 필리핀 관구에서 두 명의 사제가 더 파견되어 공동체를 형성했다.
1990년부터 한국인들의 양성이 이루어졌고 지금껏 본당 사목, 피정 지도, 영성 상담, 병원 사목, 인천과 서울 신학교 그리고 대학 강의 등을 통해 다양한 사도적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1994년 인천 전동에 수도원을 건립, 인천에 본원을 둔 수도회로 자리매김을 시작한 수도회는 1998년 강화도에 신학원을 건립, 인천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형제들을 위한 공동체로 사용하고 있다. 2000년에는 그룹 홈(Group Home) 「너랑 나랑」을 개원, 청소년 사도직에 참여하고 있으며 1992년 총장 인가를 받아 재속 아우구스띠노회를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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