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느님나라를 향한 미지의 대양을 향해 돛을 펼칠 수 있었던 나를 두고 주위에서 운이 좋다는 말을 많이 했지만, 나는 내 삶 전체를 두고 주님의 지혜에 따라 이루어진 기적이었을 따름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지금껏 큰 탈 없이 조그만 회사를 운영해오면서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경험을 하며 걸러낸 생각 가운데 하나가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남의 아픔까지도 담아낼 줄 알아야 하느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그 뜻대로 인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 아픔을 주시는 것 또한 당신께 매달리게 해 차츰 하느님을 알아가라는 뜻이 아니신가 싶다.
아울러 주님을 위해 바치면 틀림없이 채워주시는 당신의 모습을 확신하게 된 것도 미욱하기만 한 내 삶이 걸러낸 소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한국샤프를 일으킨 후 첫 배당을 받았을 때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새롭기만 하다. 공교롭게도 배당을 받은 날이 은행이 일찍 문닫은 토요일이어서 생전 처음 만져보는 엄청난 돈을 앞에 두고 월요일이 될 때까지 꼬박 이틀을 뜬눈으로 새웠다. 길고도 길게만 느껴지던 그 시간을 지내고서야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 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마태오 6, 20∼21)는 말씀이 너무도 생생하고 큰 울림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이 경험으로 인해 나는 그 때부터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되돌려드려야겠다는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런 마음이 이어지도록 해주신 것만도 내게는 과분한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사업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 지방교구 성지의 수녀님들이 나를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오셨다. 성지 중간에 타종교에서 시설을 짓겠다고 해 성지개발이 물 건너가게 됐으니 땅을 먼저 계약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마침 마음을 먹고 있던 터였으니 이런 기막힌 우연도 없지 않을까. 아마 주님께서 시키시는 일인가 보다 하는 마음에 가지고 있던 예금은 물론 비상시를 위해 지니고 있던 증권까지 모조리 팔아 드렸던 적이 있다. 지금에서야 새로이 깨닫는 것이지만 나를 통해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는 주님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오히려 감사하고 기쁠 뿐이다.
또 한번은 우연히 지방의 한 성지를 방문했다 나오는 길에 철판이 부식돼 글씨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표지판에 마음이 끌려 다시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다. 성당을 짓기 위해 도움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은 그 표지판에 왜 마음이 동했던 것일까, 그 날로 저 성당은 내가 지어 봉헌하라는 뜻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일어 몇 년에 걸쳐 성금을 보냈던 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내 마음에 함께 해주셔 당신을 향하도록 하시는 주님의 안배에는 지금도 놀라울 뿐이다.
한국샤프에 이어 1973년 샤프 전자산업을 창업해 이끌어오며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 가운데 하나는 어떤 사람이든지 저마다의 위치와 역할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신분이나 계급만으로 절대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며 직위가 높아질수록 포용력을 갖춰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샤프 본사를 둘러보고 놀란 것 가운데 하나가 수만명에 이르는 종업원 가운데 세칭 일류대를 나온 인재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이었다. 대신 회사의 성원이면 누구든지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고 그 가운데서 나온 우수한 제안을 적극 수용하는 모습은 내게 신선함 이상으로 다가왔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한사람 한사람에게 다 나름의 달란트를 심어주심을 보았던 것이다. 모든 종사자들이 혼연일체가 돼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찾아 나가도록 이끄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훌륭한 기업이 갖춰야 할 모습이 아닐까 싶다. 부족하지만 나 또한 이런 생각으로 회사를 운영하려 노력해왔기 때문일까 지금껏 한번도 분규를 경험하지 않았다. 물론 내 나름의 뜻대로 회사를 운영해오다 보니 섭섭함을 느끼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을 법하다. 이 자리를 빌어 그런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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