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설 연휴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아버지를 보기 위해 30리 길을 걸어 간 13살, 11살 형제의 애달픈 사연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8년 전 부모님의 이혼과 실직, 아버지의 절도행위로 유치장에 수감되어서 이들 형제는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사흘동안 버려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비록 아버지의 강압에 못이겨 어쩔수 없이 저지른 거짓임이 밝혀졌지만….
유치장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회경제적으로 힘없고 소외된 약자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살아가기가 힘겨웠으면 그래도 먹여주고 잘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또 다시 죄를 짓는 이들이 있겠습니까?
특별히 제가 관심을 가지고 전담하고 있는 사목은 유치장 사목입니다. 교정 사목을 떠올리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유치장은 형사피의자 형사피고인, 형벌로서의 구류(拘留)를 받은 자, 또는 다른 수사기관의 의뢰 입감자 등이 유치됩니다. 대략 일주일정도 머물다 구치소로 보내집니다. 서울의 각 경찰서에 매주 죄를 짓고 구속되는 사람들은 대략 300-400명입니다.
설 명절 노량진 경찰서 유치장 봉사자 분들의 글이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기에 잠깐 소개할까 합니다.
제일 큰 명절인 설날인데도 가족과 할 수 없는 그들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보니 유치인들이 12명이나 있다는 것입니다. 명절인데 그 차디찬 유치장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급히 과일과 떡을 챙겨서 경찰서로 갔습니다. 과일을 깎고 커피와 녹차를 타서 유치장에 들어갔습니다. 천주교에서 왔다며 변변치 않지만 함께 먹자고 나눠줬답니다. 그들은 한창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상도동 철거반대 시위 주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혹 이계호 신부님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며칠 전 자신들과 함께 담요 한 장으로 함께 노숙을 하셨는데 감기 드시지 않았는지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유치인중에는 신자도 한사람 있고 목사님도 있었습니다. 비록 종교는 달랐지만 목사님도 너무 고맙다며 인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살기가 힘이 들지만 그래도 믿음 안에서 내 몸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 여기서 있는 내 모습에 감사하며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고 마음먹으니 마음은 너그러워지고 낙천적이 되어 감을 서로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유치장을 나설 때의 그 마음을, 그 발걸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경찰사목을 하도록 손을 잡아 주신 주님을 향해 한없이 벅차 오르는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오직 감사의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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