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어디라는 것, 또 무엇을 한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든지, 필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하느님의 위로를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1857년 스페인에서 설립된 「위로의 성모 수녀회」는 창설자 성녀 마리아 로사 몰라스 수녀의 이 정신처럼, 또 그 이름에서 느껴져 나오는 이미지처럼 하느님의 위로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체험케 한다는 모토를 지니고 있다.
이같은 수녀회 영성은 고린토 후서 1장 3~4절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양받으시옵소서. 그분은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의 하느님으로서 우리의 갖은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도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받는 그 위로로, 온 환난을 당하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즉 삼위일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면서 실의에 찬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성부께로부터 파견되신 예수님을 모든 자비와 위로의 근원이 되는 표양으로 삼고 위로자이신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계시하여 주시고 그분과 일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을 믿으며 주님의 사업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설립 회칙에서도 위로의 성모 수녀회 자매들을 부르시고 모이게 하신 목적이 완성과 위로, 또한 온갖 사랑의 원천이시고 본보기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흠숭하며,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공경하며 사랑하기 위해서임을 천명하고 있다. (설립회칙 1장 1조)
창립자 마리아 로사 몰라스 수녀는 1815년 스페인 레우스에서 태어나 16세때 수도회에 입회할 뜻을 표명했으나 아버지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841년 26세 되던해 그 뜻을 이루어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에서 떨어져나온 한 공동체에 입회했다.
이후 토르토사 지역의 고아들과 노인들 그리고 정신 장애인들의 수용 시설이었던 「자비의 집」을 운영하게 된 마리아 로사는 탁월한 운영 능력을 발휘하여 당시「비참의 집」이라 불리웠던 그 시설을 이름 그대로 「자비의 집」으로 만들었다. 이에 시당국은 마리아 로사에게 학교와 시립병원의 책임을 맡게 하였다.
위로의 성모 수녀회는 이같은 과정에서 태동했다. 마리아 로사는 자신이 입회한 공동체가 이미 입회 시기전부터 교회와 연결을 맺고 있지 않은 상황임을 깨닫고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교구 소속 수도회로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였다.
1857년 토르토사 교구 참사회 대리 마네로 신부는 이 수녀회의 활동은 이웃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위로의 수녀회」로 이름 붙였고 이후 현재의 「위로의 성모 수녀회」 명칭으로 정착됐다.
수녀회는 1888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교황청 설립수녀회로 승격됐으며 1901년 최종적으로 회헌을 인준받았다. 마리아 로사는 1977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됐고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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