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일은 하느님께서 시키시는 일이다 싶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려는 마음에 이일 저일을 돕다보니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도 시대와 여건마다 다를 수밖에 없음을 알게된 것도 나이든 이에게 주시는 지혜의 선물인가 보다.
이런 깨달음을 구한 곳 가운데 하나가 한국가톨릭군종후원회다. 1989년 군종교구가 생기기 전 군사목을 펼치며 군종단 일을 맡아보시던 김계춘 신부님(부산 반여본당 주임)의 거듭되는 부탁을 몇 차례나 고사하다 가까이 지내던 주교님마저 동원하시는 통에 기어이 거절하지 못하고 이름만 걸어놓자고 생각하고 벌인 일이 올해로 꼭 20년째를 맞게 됐다. 드러나지 않게 숨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씀만 믿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쩌면 김신부님과 같은 분들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는지도 모르겠다.
한해에 20만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드나드는 군대를 「선교의 황금어장」이라고들 하는데, 이 어장에서 사람을 낚는 군사목을 뒤에서 돕는 일이 바로 군종후원회 활동이다. 마치 어부들이 쓸 촘촘한 그물을 장만하고 갈릴래아 호수에 띄울 배를 만드는 일을 돕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어떤 일도 10년 정도 하면 문리가 트일 법도 한데 후원회 활동은 하면 할수록 해야 될 일이 넘쳐나는 것 같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의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떠나지 못하게 하시는 주님의 안배가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마 당신의 일을 통해 미욱한 사람으로 하여금 더 많은 깨달음을 얻으라는 뜻이 아니신가 짐작만 할 뿐이다.
군사목을 도우며 새삼 깨닫게 되는 진리 가운데 하나는 조그만 관심과 사랑이 태산도 옮길 힘을 지닐 수 있다는 점이다. 군종교구가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지난 2001년에는 영세자가 2만명을 돌파하는 신기원을 이루는 벅찬 감동의 순간을 지켜보기도 했다. 우리의 교세나 당시 현실에 비춰볼 때 이런 결과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활발하게 군선교에 투자하고 있던 타 종단들이 긴장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군사목을 교회의 희망으로 여기고 조그만 사랑을 모아준 수많은 이들의 힘, 그리고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랑의 씨앗을 뿌려온 군종교구장 주교님을 비롯한 신부님들의 피와 땀이 없었으면 여전히 불가능의 영역으로 남아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군종후원회 활동을 하면서 접하게 되는 이런 모습들은 적잖은 나이로 소침해지기 쉬운 나 같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주님께서는 늘 어떤 식으로든 당신 사람들을 부르시는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되자 『깨어 있어라』는 주님의 말씀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요즘 들어 더욱 골몰하게 되는 게 내 처지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뜻에 맞갖게 깨어있는 자세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아직은, 그리고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깨어있음」의 정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의 말씀에 성실히 응답하려 노력하는 삶이 부족한 사람을 당신의 도구로 불러주신 은총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본격적으로 군종후원회 회장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였는데 사실 나는 이름만 걸어놓았지 고생은 사무국을 꾸려온 수녀님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이 다 도맡아 한 셈이어서 늘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1년에도 수십 번 전후방을 오가며 병사들의 어깨를 토닥인다는 게 말이 쉽지 보통 각오로는 나서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때가 추울 때나 더울 때를 가리지 않고 있는 것이어서 일일이 제때에 응답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무슨 죄라도 지은 듯하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늘 이 모자라는 사람을 찾는 이들이 있어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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