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함께 해주신 하느님의 손길을 깨닫다 보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까지도 헤아리고 안배하시는 그 분의 사랑에 경탄을 금할 길이 없다.
군종후원회 활동을 하며 방방곡곡을 다니다 보면 놀라운 체험과 감동의 순간을 맞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출을 보며 떠난 길을 되짚어 올 때면 한밤중은 보통이고 새벽을 맞이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여름의 한낮 길을 걷기도 하고 송곳 같은 바람이 살을 파고드는 한겨울의 산길을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때도 적잖다. 이런 무수한 길을 오가면서 설마 이런 데 사람이 살까 싶은 곳에서 불쑥불쑥 얼굴을 내미는 나이 어린 병사들을 볼 때면 몸 속 어느 한 곳으로 한줄기 바람이 스쳐가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이들은 왜 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가」
이 땅을 딛고 서있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면 자신과는 무관할 지도 모를 숱한 어려움을 인내해야만 하는 병사들의 모습에서 나는 「순교자」의 얼굴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체험이 지금껏 이 일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힘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기를 쓰고 전방을 찾아다니는 군종후원회 회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체험한 감동의 순간을 같이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절로 웃음을 머금게 된다.
나같은 노인들이 병사들을 위해 싸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위문품이라야 한 보따리도 넘기 힘들지만 분명 새하얀 머리의 할머니 회원들이 짊어진 것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그들이 신명나게 져 나르는 것은 풀어내도 풀어내도 줄지 않는 사랑의 보따리임에 틀림없다.
한번은 바람이 매서운 날, 남과 북을 잇는 철도 공사가 한창이던 서부전선을 방문한 적이 있다. 북녘땅이 지척인 곳에서 이 땅의 허리를 잇는 작업을 하고 있는 군인들을 보며 또 다른 감동과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분단된 이 땅에 태어나 지구상의 누구도 지지 않고 있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면서 역사의 아픔을 삭이고 있는 듯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발 앞서 살아온 세대로서 무거운 책임감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삶에 보속하는 마음에서일까, 나는 지금껏 병사들이 요청하는 일이라면 거의 물리쳐본 기억이 없다. 미사를 봉헌할 데가 없어 예배당을 빌려 미사를 드려야만 하는 장병들을 위해선 성당을 지을 수 있도록 조그마한 사랑이나마 보탰고, 추위에 떨며 성서말씀을 나눠야 하는 병사들을 위해선 히터나 장갑이라도 보내야만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이렇게 하다보니 어느 틈엔가 깨닫지도 못하는 새에 육군 사관학교를 비롯해 해군 사관학교, 육군 3사관학교 등 간성을 키워내는 요람에 성당을 새로이 건립하는가 하면 일일이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로 이 곳 저 곳에 사랑을 쏟게 됐던 것 같다. 이런 까닭에 어쩌다 먼길이라도 나설라치면 발길이 가닿을 곳곳에서 숨쉬고 있을 사랑의 편린들이 떠올라 마음부터 설레기 일쑤고, 오가는 길에 만나는 하찮은 풍경들에도 오랫동안 마음이 머물게 되는 것을 어쩔 수 없게 됐다.
그러면서도 나는 지금껏 성당 봉헌식이나 축성 행사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다. 이런 나를 두고 주위에서는 유별을 떤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누가 자신이 지어 바친 하느님의 집을 보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굳이 이렇게 해온 것은 애초 군종후원회 활동을 시작하며 내 사사로운 명예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하느님 일을 방편으로 삼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초심을 지키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혹시라도 마음과 같지 않게 유별을 떠는 듯한 이런 내 모습으로 상처를 받았던 이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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