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리아 로사 몰라스의 위로의 성모 수녀회 창설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의 위로자가 되리라』(이사 51,7.12)하신 주님 약속에 전적으로 의탁,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이사 40,1)는 외침에 구체적으로 응답한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신비적 관상과 가장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헌신을 일치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류의 스승, 사랑의 새로운 문명의 창설자,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위로의 카리스마를 소유한 인물』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은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녀를 복자품에 올리면서 『수도회 회원들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복음에 충실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모델로 소개한다』고 밝힌바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을 통해 『성녀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을 위로하였고, 위로하면서 온갖 위로의 원천이신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이 여인의 삶 자체가 하느님의 자비와 위로를 선포하는 예언자적인 표시』라고 언급했다.
창설자의 영성은 수도회 회원들 안에서 또 수녀들의 봉사를 받은 이들 가운데 또 다른 성덕가를 만들어내는 결실을 맺고 있다. 현재 시복 단계에 있는 마리아 데레사 곤살레스 후스토 수녀가 대표적 사례. 그는 창설자를 본받아 깊은 사랑과 겸손, 기도의 모범으로 표양을 남기고 있다.
수녀회 한국 진출은 1986년 5월 14일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 초청으로 이뤄졌다. 이때 마틸다 세기 수녀와 카르멘 로스 수녀가 입국했고 마리아니스트 수녀회 본원에 임시로 거주하며 한국 교회와 인연을 맺었다.
1988년 스페인으로부터 두명의 수녀가 더 입국하면서 현 본원 소재지인 서울 성북구 성북1동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를 계기로 보다 본격적인 활동이 시도되었다. 이후 1999년에는 경기도 화성군 봉담읍 왕림리에 수련소를 마련했다.
이들 사도직은 카리스마와 영성을 바탕으로 갖가지 불행과 궁핍을 겪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위로를 전하고 이를 세상에 현존시키는 것에 기본을 둔다. 그런면에서 시대와 지역이 필요로 하는 것이면 그 어떤 것이라도 수도회가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위로의 성모 수녀회는 현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15개국에서 활동중인데 한국 경우 진출 초기부터 자체 양성 작업과 함께 빈민식당 공부방 등에서 봉사하며 가난한 이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또 성북동 본원에서는 기도 모임을 열고 특별히 젊은이들이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을 갖도록 배려했다.
현재 세 공동체에서 각각 다른 사도직을 펼치며 위로의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는 수녀회는 1999년 성북동 본원에 가출 소녀들을 위한 일시보호시설인 『우리들 쉼자리』를 개소, 가출 소녀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며 2002년에는 서울교구 김병도 몬시뇰 요청으로 쌍문동에 어르신들을 위한 공동체 「위로의 성모의 집」을 열었다. 또 수원 교구 왕림에 위치한 수련소는 피정의 집 운영을 통해 수도회 카리스마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영혼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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