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 같았던 울타리
지금까지 보았듯이 로마-가톨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운 교회를 자신과 「절대적으로 그리고 독점적으로」 동일시해왔다. 그리하여 동방 정교회는 물론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교회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가톨릭)이며 사도로부터 이어 온』 교회만이 참 교회(ecclesia vera)이며 이들 가운데 한 가지라도 빠뜨리면 결국 실격이라는 논지였다.
반면, 동방 정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네 가지 교회의 특성 가운데에서 그들에게 불리한 「하나이며」와 「사도로부터 이어 온」이라는 요건을 빼버리고 참 교회가 되려면 「거룩하고」 「보편적(가톨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중세 교회의 타락상을 부각하여 로마 교회(Romanists)는 더 이상 「거룩한」 교회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동시에 로마 교회가 전통을 지나치게 내세우면서 「가톨릭」의 궁극적인 근거인 복음에 불충실해왔기 때문에 더 이상 「가톨릭」이라는 말을 간판으로 내걸 자격이 없다고 공세를 펼쳤다.
이런 공격들에 대항해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참 교회는 오직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esse)』라고 결정적으로 선언함으로써 철옹성 같이 교회의 울타리를 쳐 놓았다. 이는 누구든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더 이상 교회의 일원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선언이다. 이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입장이었다.
위대한 선언
이런 관점이 바뀐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와서의 일이었다. 이 공의회는 먼저 참 교회의 요건으로서 『하나이며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는 니체아-콘스탄틴노플(381)의 고백을 거듭 확인하면서 이런 교회가 바로 『우리 구세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맡겨 사목하게 하셨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위임하여 전파하고 다스리게 하셨으며(요한 21, 17), 영원히 『진리의 기둥과 기초』(디모 전 3, 15)로 삼으신 유일한 교회이다』(교회헌장 8항)라고 밝힌 연후에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
『이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이 다스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교회헌장 8항).
이 선언을 통하여 종래의 「이다」(esse)라는 단어가 「-안에 존재한다」(subsist in)는 숙어로 대체되었다. 이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다. 이로써 진정한 교회는 가톨릭교회「이다」(esse)라는 독점적(獨占的) 선언에서 진정한 교회는 가톨릭교회 「안에 존재한다」(subsist in)고 하는 개방적(開放的) 언급으로 진일보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곧 가톨릭교회 밖에도 진정한 교회가 있다고 인정(認定)하는 것과 진배 없었다. 그래서 공의회는 분명히 언급하였다.
『이 조직의 밖에서도 성화와 진리의 요소가 많이 발견되지만, 그것은 본래 그리스도의 교회에 고유한 은혜로서 공번된(가톨릭적) 일치를 촉구하는 것이다』(교회헌장 8항).
이는 비록 서로 「가톨릭적」 일치를 이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토를 달고는 있지만 수백 년 동안 서로를 단절시켜왔던 철옹성을 허무는 선언이었다. 이렇게 해서 「가톨릭」에 대한 절대적이고 독점적인 소유권 주장은 이제 철폐된 셈이다. 이는 「가톨릭」 본연의 의의에 부합하는 조치였다. 왜냐하면 「가톨릭」은 다른 사람들을 암흑이나 타락 속에 몰아넣음으로써 향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의회의 입장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의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톨릭 교회가 이들 「갈라진 형제들」과도 여러 가지 이유로 「결합되어 있음」(coniunctum esse)을 알고 있다(교회 헌장 15항). 그런 까닭에 공의회는 이들을 더 이상 종전처럼 「이단」, 「열교(裂敎)」, 또는 「사이비」라 부르지 않고 『교회들 및 교회 공동체들』이라 칭한다. 이들을 이렇게 부른 것은 곧 『교회』라 인정받기 위해 요청되는 「가톨릭」적 요건이 부분적으로라도 이들에게 있다고 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아 있는 숙제
하지만 공의회는 여러 교회들이 지니고 있는 현실적인 한계와 풀어야할 과제 또한 의식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가톨릭의 「온전성」을 깨트리는 「분열」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의회는 이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러나, 세례로 교회에 속하면서도 완전한 일치를 떠난 형제들 안에서 교회에 고유한 보편성을 완성시키려는 교회의 사명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크리스천들의 분열이다. 이 분열 때문에 교회 자체로서도 그 현실 생활 속에서 완전무결한 보편성의 충만을 드러내기 어렵게 되었다』(일치 운동 교령, 4항).
이처럼 공의회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가톨릭」적 성격이 바로 교회의 분열로 인해서 힘을 잃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결국 공의회는 가톨릭교회가 참으로 「가톨릭」 교회가 되기 위한 길을 제시한 셈이다. 「가톨릭」이 사는 길은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이 노력을 통해서 가톨릭교회는 더욱 가톨릭적으로 되며 마침내는 「보편성의 충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사는 길
정리해 보자. 가톨릭교회가 사는 길은 자명하다. 그것은 우리만이 「가톨릭」 교회라고 독점적인 요구를 하는 태도를 버리고 타교파를 인정하고 그들과 일치를 이루려 노력하는 것이다. 「가톨릭」이라는 호칭을 로마-가톨릭의 「전유물」로 주장하는 태도야 말로 비가톨릭적이며 반가톨릭적인 태도이다. 가톨릭의 보편성을 훼손하고 스스로를 울타리 속에 가두어 두는 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교 교파들은 서로를 「반대교파」로 여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본연의 「가톨릭」적 전권과 사명을 공유하는 「동일한 신앙의 다양한 형태」로 여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가톨릭은 인정함으로써 인정받게 되어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