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세우고 7년 남짓 지난 1979년 신자기업인들의 모임인 한국가톨릭실업인회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살기 힘든 때, 뜻있는 이들이 모여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슨 조그만 일이라도 도모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창립 활동에 참여했다. 82년에는 서울대교구 가톨릭실업인회가 만들어졌는데 어쩌다 보니 부회장직까지 맡게 됐다. 그러다 84년부터는 도망다니다 시피하며 몇 차례나 고사하다 결국 한국가톨릭실업인회 회장이라는 무거운 십자가까지 지게 됐다.
제4대 회장을 시작으로 내리 네 번을 연임하며 8년간을 봉사하고서야 겨우 자리를 넘길 수 있었다. 회장으로 있는 동안 사회 속에 교회를 심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고 회원들이 하느님 일을 한다는 기쁨으로 나설 수 있도록 그리스도 정신으로 재무장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성금만 전달하기보다 가능한 한 회원들과 현장을 몸소 찾아 어려움을 함께 돌아보고 마음을 나누려 노력했다.
또 숨어있는 하느님의 보석을 발굴하기 위해 장학사업에 열을 올렸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그 때 뿌려진 씨앗들이 어디선가 결실을 맺어 주님의 도구로 쓰여지고 있으리라는 믿음에 지금도 장학사업에는 누구 못지 않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짧지 않은 실업인회 활동을 통해 건진 소득 가운데 하나가 「인간은 하느님께서 맡기신 재화의 관리자일 뿐」이라는 생각을 확고히 다지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능력을 지닌 이들 가운데는 그 능력을 자신의 전유물인 양 여기고 나눌 줄 모르거나 자신만을 위해 쓰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이들을 볼 때면 부끄러움에 앞서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인다. 혹여 누구보다 좀더 잘나서 능력을 갖게 됐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이 생명의 본연인 주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특히 신자들 가운데서 이런 이들을 볼 때면 오히려 내 낯이 달아오르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실업인회 활동을 하며 세상을 좀더 깊숙이 들여보다 보니 겸양의 마음이 흐트러졌음일까, 「도대체 세상 돌아가는 꼴이 이게 뭔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내 가슴 한켠에는 하느님이 주관하시는 세상에 대한 한 가닥의 의구심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내 모자람의 탓이 컸겠지만 당시 내게는 아름다운 것보다는 오히려 성에 차지 않는 일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세상의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가지려 하는 이들을 볼 땐 서글픈 마음마저 들기도 했다. 보기 좋고 아름다운 것에 사람의 마음이 끌리는 게 인지상정이라고는 하나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가난」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 아내 표태옥(수산나)의 회갑을 맞아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아내는 자칫 교회와 멀어질 뻔했던 내 마음을 다잡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