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명백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는 규정 중의 하나는 바로 잔여배아의 활용을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들은 당연히 초기 단계의 인간 배아를 하나의 온전한 인간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는데에서 기인한다.
생명윤리법은 「잔여배아」에 대해 제2조에서 『인공수정으로 생성된 배아 중 임신의 목적으로 이용하고 남은 배아를 말한다』고 규정한 뒤 제13조부터 21조까지 이에 대한 규정들을 담고 있다.
특별히 이 법은 제16조에서 「배아의 보존기간 및 폐기」에 대해 규정하면서 동의권자가 배아의 보존 기간을 5년 미만으로 정하는 경우 외에는 배아의 보존기간을 5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배아생성의료기관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은 이러한 규정에 의한 보존기간이 도래한 배아 중 제17조 규정에 의한 연구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배아를 폐기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이처럼 배아를 폐기하는 절차와 방법, 배아의 폐기에 관한 사항의 기록, 보관에 대해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했다.
17조는 「잔여배아의 연구」에 대한 규정들로 16조의 규정들과 함께 잔여배아에 대한 심각한 독소조항이다. 17조는 앞서 규정한대로 보존기간이 경과한 잔여배아는 『발생학적으로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까지에 한해 체외에서 다음 각호의 1의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역시 하나의 인간 존재로 받아들여야 하는 잔여배아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인간 배아의 지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인간의 생명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순간부터 자연사까지 단 한순간도 중단없는 연속성을 지닌다.
단지 배아가 초기 단계라고 해서, 즉 법에 규정된 대로 「원시선」이 나타날 때까지의 인간 배아에 대해 연구를 허용한다는 것은 이러한 생명의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초기 배아는 생명이 아니라는, 따라서 인간 존재라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은 배아 연구의 상업적 이용을 꾀하는 일부 생명과학자들이 배아 연구 허용을 위해서 끊임없이 강변했던 내용이다.
결국, 생명윤리법에서 이러한 규정들을 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일부 생명과학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생명윤리법 제정의 원래 취지와 심각하게 어긋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성되고 냉동보관되고 있는 이러한 잔여배아들과 관련된 현황을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인간 배아의 생성과 연구가 전혀 아무런 관리나 감독 없이 무제한적으로 이뤄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불임 클리닉 등을 중심으로 생성 보관되고 있는 냉동 배아가 무려 80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즉 모체에서 제대로 자리잡으면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할 생명체 80만명이 꽁꽁 얼어있는 상태에서 보관되다가 이른바 불치병 치료라는 미명 아래 실험실에서 희생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내에서의 배아 관리 실태를 제대로 파악한 통계는 아예 잡혀있지도 않다. 가장 기본적인 통계는 고사하고 추정 조차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은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를 나타낸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01년 10월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전국 8개 국공립 의료 기관의 자료를 종합해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국내의 배아 관리 실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이 보고서는 특히 1996년 냉동 보관 중인 배아의 수치와 1997년 수치 사이에 9225명(개)의 차이가 나타났고, 따라서 1만명에 가까운 인간 배아가 어디론가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통계상의 실수가 아니라면 이는 무단으로 폐기되거나 연구에 이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지금까지 배아 관리에 있어서 국내의 현황은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고 할 수 있고 비록 생명윤리법이 입법됐다고 해도 잔여배아의 활용을 허용함에 따라 그같은 상황은 크게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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