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매섭던 바람이 한결 포근해진 것이 느껴진다. 추운 겨울이 이제 끝나려나 보다.
지난 겨울이 예년에 비해 덜 추웠다고들 하지만 내가 만나는 어르신들은 이 겨울이 더 춥게, 더 길게 느껴졌을 것이기에 따스한 햇살이 반갑기만 하다.
언젠가 인근 성지에 피정을 간 적이 있었는데 양지바른 곳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오랫동안 내 눈길을 끌었다. 까르르 하는 아가의 웃음소리, 잔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할머니가 아가를 어르고 있었다.
며느리인 듯한 젊은 여인이 행여나 햇볕이 따가울까 염려되는 듯 할머니 머리에 손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고 젊은 가장은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정겨운 가족의 모습에 괜히 가슴이 울컥해짐을 느꼈다. 아직도 저렇게 화목하게 사는 어르신이 있구나 하는 마음에 그 젊은 부부가 고맙기까지 했다.
단순한 한 가정의 가족나들이인데 자꾸 그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할머니의 주름진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효도를 지고의 덕목으로 내세우던 우리 사회에서 근래 벌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떠올리면 서글퍼지려 한다.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에 화까지 나려 한다.
언젠가 만났던 젊은이는 동방예의지국이란 말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일거라고 말했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잘 하면 되는 것 아니냐, 어른이라고 무조건 대접하라는 것 같아 껄끄럽다고 한다.
물론 노인관련 문제들이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조금씩 무너져왔던 가치의식들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표면화되고 공론화되어 문제시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앞으로는 이런 가치전도의 일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젊은이의 생각처럼, 더 이상 덕목으로 강조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이러한 현상이 비신앙인 뿐만 아니라 신앙인 가족에서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인사목 현장의 이야기들은 어쩌면 생각하고 싶지 않거나, 우리 가족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길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잠깐 멈춰 서서 함께 마음 아파하길 청하고 싶다. 아마도 우리들 중 누군가가 겪을 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성당 구석자리에서 자녀들을 위해 웅얼웅얼 기도하시는 어르신들의 구부러진 등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이 하늘 아래에 내가 자녀를 사랑한 만큼 나를 사랑해줄 자녀가 있다고 느끼는 어르신들이 얼마나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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