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간의 존엄성과 결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들을 보호하기 위한 교회의 가르침을 가톨릭 사회 교리라고 부른다. 인간의 발전과 온전한 해방을 지향하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적인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응답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한 가톨릭 사회 교리의 대헌장으로 불리는 것이 바로 교황 레오 13세의 「노동헌장」(Rerum Novarum)이다. 레오 13세가 1891년 5월 15일에 반포한 이 회칙은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해결방안과 이론을 분석, 비판함과 동시에 새로운 사회 경제 질서의 원리를 제시했다.
문헌의 첫 머리를 따서 「새로운 사태」로도 불리는 이 회칙에 대해 교황 요한 23세는 새로운 사회, 경제 질서의 대헌장이라고 불렀고 비오 11세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교적 사회 활동의 안전한 기초가 되는 대헌장이라고 칭했다.
이후 교회는 「사십주년」(Quadragesimo Anno),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치고 반포된 「사목헌장」(Gaudium et Spes),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cercens), 「백주년」(Centesimus Anno) 등등 교황 회칙과 메시지, 사도적 서한, 교황청 문서,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문헌과 대륙 주교 회의 문헌들을 통해 정치 사회 경제 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펼쳤다.
레오 13세 교황(1810~1903)은 1878년 전임 비오 9세의 뒤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돼 1903년까지 25년 5개월 동안 교황직을 수행함으로써 교회 역사상 세 번째로 긴 교황 재위기간을 기록했다.
그의 본래 이름은 빈첸조 조악키노 페치(Vincenzo Gioacchino Pecci)로 로마 남동쪽의 아나니 인근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예수회 교육을 받은 그는 이후 로마 신학교와 로마 귀족 학원에서 철학, 신학, 법학을 공부했고 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1837년에 사제로 서품된 그는 이듬해에 베네벤토의 총독이 됐고 1841년에는 스플레토와 페루지아 총독을 역임했으며 1843년에는 벨기에 주재 교황대사로 임명됐다. 그는 이때 산업 선진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으로 시찰을 다니면서 산업혁명 이후 야기된 새로운 사회 현상에 대해 눈뜨게 됐고 특히 그 과정에서 가톨릭교회의 입지가 어려워졌음을 깨달았다.
이후 페루지아의 주교로 임명된 그는 30여년 동안 사목활동에 전념했는데, 1853년에는 추기경으로 서임됐고 교황청 국무 장관이 사망한 뒤인 1877년에는 교황청 회계원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교황 비오 9세가 서거한 뒤 교황선거를 주관하게 됐는데, 세 번째 투표에서 교황으로 선출됐다.
레오 13세 교황의 치적은 무엇보다도 외교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치 외교적으로 능란한 수완을 보여준 레오 13세는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때에 교황직에 올랐다.
그는 교황에 즉위한 뒤 유럽 제국의 귀족들과 국가 원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상호 화해와 이해에 대한 열망을 표시했다. 이 메시지에 담긴 그의 열정은 교회를 반대하는 이들에게까지도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와의 외교적 긴장관계는 해소되지 못했고 그의 재위 중에는 이러한 갈등 관계가 호전되지 못했다.
레오 13세가 교황이 되기 전부터 독일에서는 이른바 「문화투쟁」(Kulturkampf)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는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가톨릭 교회를 국가 통제 아래 두기 위해 1871년부터 1887년까지 프로이센과 전 독일 지방에 걸쳐 벌였던 교회와 국가 사이의 투쟁이다.
교황은 이와 관련해 독일 정부에 문화투쟁의 종식 가능성을 내비쳤고 비스마르크의 협력을 통해 악화됐던 관계가 호전됐다. 이후 교회를 반대하던 악법들이 차츰 폐기됐고 상호 평화사절을 파견하는 과정을 통해 문화투쟁은 막을 내렸다.
한편 레오 13세 교황의 사상과 정책의 기본 원리는 그가 발표한 많은 사회 회칙들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가 발표한 여러 회칙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회칙이 바로 「노동헌장」이다.
산업사회의 노동자 문제라는 이 「새로운 사태」에 직면해 교회는 문제 발생의 원인을 인식하고 어떤 방향에서 사회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노동헌장」이 지닌 근본적인 관심사는 노동자의 비참한 처지였다.
문헌은 사회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양극단을 피하면서 그리스도교적인 사회 원리를 제시하고 소외된 가난한 이들, 특히 노동자 계급에 관심을 표명했다. 레오 13세 교황은 이 문헌을 통해서 개인을 도덕적으로 퇴락시킬 수 있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인권이나 종교적 복지를 외면하고 사회 복지만을 강조해 개인의 자유를 경시하는 사회주의를 모두 단죄했다.
노동헌장의 이러한 가르침은 가히 예언자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전세계는 동서 양 진영으로 나뉘어 냉전을 겪었지만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격변은 교회의 시대를 꿰뚫는 안목을 증명해주었다.
자본주의 진영은 20세기 초반, 국가의 경제에 대한 개입과 통제를 강화했고 사회주의 체제들은 최근에 와서 사유재산제와 자유 시장 경제 원리를 도입하는 한편 경제와 노동 조합에 대한 국가 통제를 축소했다. 결국 자본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각기 비난하던 노동헌장의 노선에 스스로 접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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