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맘에 남아있지 않은데 중요한 순간에 항상 기억되고,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다. 내 안에 삶의 진리로 각인된 소중한 체험들이 그런 것들이다. 잠언은 평범한 듯 하지만 치밀하고, 단순하고 차분한 듯하지만 의외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잠언을 만들어온 현인들의 소중한 체험이 절대적 진리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부터는 이러한 잠언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접근해보기로 한다.
1~9장(책의 시작과 지혜시)
이미 강조된 바 있듯이, 잠언 1~9장은 다른 부분에 비하여 비교적 체계적이고 신학적인 내용으로 되어있다. 책 전체의 서론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 부분은, ① 표제(1, 1) → ② 시작하는 말 (1, 2~7) → ③ 지혜시(1, 8~9, 18)의 삼 단계 구성을 보여준다.
표제(1, 1)
표제는 이 책 전체의 저자를 『이스라엘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1열왕 4, 29~34에 의하면 솔로몬이 3000개의 잠언을 지었다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러한 이스라엘의 고유 전통이 잠언의 저자를 솔로몬으로 상정케 한 것이라 추정된다. 그러나 이미 입문에서 언급한 바대로, 잠언의 저자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인 내막을 품고 있기에 단순한 규정이 불가능하다고 해야한다.
시작하는 말(1, 2~7)
표제에 이어, 이 책 전체의 편찬 동기와 목적이 제시된다(2~4절). 「지혜와 교훈을 터득하고」, 「정직함을 얻으며」, 「현명을 베풀기 위한 것」을 잠언집의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부분의 마지막 구절(1, 7)은 잠언집 전체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구절인데, 모든 「지혜의 근원」을 밝히고 있다.
『야훼를 경외함은 지혜의 근원이며,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교훈을 업신여긴다』(1, 7).
이러한 잠언 1, 7은 모든 지혜와 인식, 판단의 근거를 하느님에 두는 일종의 신학적 고백이며, 앞으로 전개될 잠언집의 모든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고 하겠다.
지혜시(1, 8~9, 18)
이어 등장하는 지혜시는 지혜로운 삶에 대한 일종의 「교훈 모음」이다. 이 지혜시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① 지혜의 기원과 의인화에 대한 담화(1, 20~33) ② 여러 주제들(악인들과 낯선 여인들, 게으름과 간음에 대한 경고 등: 1, 8~19 2, 1~9, 18)에 대한 가르침이 그것이다. 다양한 주제가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이 부분은 일관된 제작과정을 거치지 않고, 여러 시대와 상황, 장소, 사건 속에 점차 형성된 모음집임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1, 7에서 고백되었던 지혜의 근원이 9, 10에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혜의 시작은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며, 거룩하신 분을 아는 것이 곧 깨달음이다』(9, 10).
각각의 교훈들에 대한 내용들 소개는 다음 주에 이어지게 된다.
하느님을 두려워함이란?
지혜의 근본이라고 제시된 「주님께 대한 두려움」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두려움, 공포와는 분명한 차이를 둔다. 하느님을 모든 시간과 공간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주인으로 분명히 인식하기에, 내 삶의 순간 순간을 모두 그분께 의탁하고 순응하겠다는 신학적 자세가 바로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도전과 패기를 미덕으로 삼고, 「지혜」보다는 「지능」을 앞세우는 현대인들에게, 잠언의 이러한 주제는 왠지 수동적이고 맥풀린 자세로 여겨질 수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삶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는, 그리고 삶의 이치와 진실을 들여다 본 자 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은, 결코 하느님을 거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음을 깨달을 때 지혜로운 삶은 시작된다.
그러므로, 「쓸모 없는 삶이란 없다」고 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쓸모 없는 삶이란 분명히 존재한다」.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살아갈 때, 자신의 진실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한번도 귀 기울인 적 없을 때, 그 삶은, 냉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감히 쓸모 없는 삶이라 해도 무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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