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느끼는 행복 가운데 하나는 이 나이에도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고 부족하기 그지없는 삶이지만 나눌 수 있는 게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부끄럽기만 한 삶을 드러내 보인 것은 오로지 미지근한 마음을 지니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혹여 이 일로 뜻하지 않은 오해나 부담을 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한 일이 아님을 이 자리를 빌어 밝히고 싶다.
돌아보면 주님께서 늘 함께 해주셔서 기쁠 수 있었던 내 삶은 하느님께서 예비해두신 게 틀림없는 것 같다. 성령의 인도로 당신을 향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안배해주신 데 감사의 마음 주체할 길 없다. 아울러 주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죽는 날까지 당신의 나라를 꿈꾸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 1992년 평협차원에서 공명선거운동을 펼치며 차량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필자. 오는 4.15 총선에서도 올바른 지도자를 뽑아야겠다.
▩ 남기지 못한 이야기들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겸손한 분”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9, 35)
이관진 회장을 만나면서 줄곧 기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성서 구절이다. 새롭게 발견하게 된 이회장의 면면은 만날 때마다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회장 부인을 통해 접하게 된 주님의 모습을 당사자의 요청으로 끝끝내 싣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이 자리를 빌어서나마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실업인회 활동시절 이회장은 부인을 통해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한번은 35㎏이 겨우 넘는 약골로 병치레를 해온 부인이 죽을 고비를 맞게 돼 지방의 병원으로 요양을 가게 됐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꼭 죽은 사람같아 두려운 마음을 떨치지 못했는데 몇 시간 후 이회장이 병실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자 부인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반갑게 맞으며 성모님께서 자신에게 15년 이상 살게 해주겠다는 것과 몸무게가 45㎏만 되도 좋겠다는 평소의 소원을 들어주시겠다는 두 가지 약속을 하셨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처음엔 뚱딴지같은 소리라 별로 개의치 않았으나 병상에 누워있는 두달 사이 몸무게가 꾸준히 늘더니 거짓말같이 꼭 45㎏이 되자 멈췄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껏 이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이회장은 이 체험으로 주님을 새로이 영접하고 지금껏 한번도 의심을 품은 적이 없다고 한다.
글을 통해 이회장의 삶이 소개된 후 그의 신앙을 증언하는 수많은 제보가 잇따랐다. 숱한 얘기를 접하며 그가 교회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크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으나 다 담아내지 못하는 아쉬움 또한 커진 게 사실이다. 제보자들이 공히 전하는, 이회장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은총은 「겸손」이라는 것이다. 실제도 그랬다. 조금이라도 개인의 자랑이 될만한 얘기에는 한사코 말문을 닫는 그였다. 이런 모습은 그의 행보에서도 드러나 오랜 교회활동에도 불구하고 행적을 남기는 일이 거의 없어 사진자료를 구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어쩌면 너무도 사적인 일마저 남을 위해 털어놓는 그의 모습에서 주님을 위해서라면 그물에 든 한 마리의 물고기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충실한 종 베드로의 얼굴이 겹쳐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