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 년간 생명윤리는 가장 첨예한 논쟁 영역 중 하나였다. 종교계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들과 정부, 그리고 생명과학자와 의료계 등은 관련 사안들을 둘러싸고 지난 몇 년 동안 광범위한 토론을 벌여왔다.
하지만 그러한 논쟁 과정을 거친 뒤 제정된 생명윤리법은 애초의 취지와는 어긋나는 방향으로 입법됐고, 결국 생명과학을 둘러싼 논쟁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나 윤리적인 기준에 토대를 두지 않고 바이오 산업의 진흥이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정책 방향이 수립되고 말았다.
생명윤리 관심·홍보 필요
한국 교회는 수없이 교회의 입장을 피력해왔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를 비롯해 서울대교구 생명윤리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법 제정과 관련한 토론 과정에 적극 참여해 교회의 가르침과 입장을 표명하고 생명의 존엄성과 윤리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이러한 지적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입법 과정과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소간 회의적이다.
우선 생명윤리 문제와 관련된 교회의 가르침이 신자 저변에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다. 관련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그 토론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극히 일부 전문가들에 국한됐을 뿐 일선 사목현장에서는 그러한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부족했다.
생명윤리 문제에 대한 오늘날의 사회적인 인식이 희박하기 때문에 그만큼 신자들의 관심과 참여가 더욱 요청된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신자 전문가, 과학자들의 몫이다. 교회는 크고 작은 의료 기관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고도의 전문성을 지닌 신자 과학자와 의사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작 생명윤리를 둘러싼 논쟁에서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은 윤리신학을 전공한 일부 성직자나 몇 개 유관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 뿐이다. 정작 나서야 하는 신자 전문가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해당 분야의 전문가 집단 내에서의 입장과 이해관계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적어도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는 전문가들과 그들의 연합 기구 등을 통해서 교회의 입장과 자신들의 신념이 피력된다면 교회의 가르침은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생명윤리법 시행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으로 생명윤리 문제를 확대시킬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배아 복제를 비롯한 문제들이 지속적인 토론의 양상을 가졌지만 악법으로 지목되는 현행 생명윤리법이 본격 시행되면 그렇지 않아도 정부의 적극 지원 속에 진행되고 있는 치료용 배아 복제 연구가 아예 공식적인 면죄부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생명과학계가 배아줄기세포를 둘러싼 연구 성공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냉동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만드는 획기적인 기술도 개발됐다고 발표됐다. 이처럼 배아 복제 연구 성공 소식이 이어지면서 정부의 바이오 산업에 대한 지원과 독려는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배아 복제 의료 단지, 배아 복제 연구소 설립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 성공 소식으로 일약 한국 바이오 산업계의 영웅으로 떠오른 한 과학자는 한 일간지 칼럼에서 「바이오 코리아」를 건배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생명윤리 문제는 「바이오 코리아」에 압도되어가는 듯하다. 이제 교회는 생명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생명윤리가 허물어진 사회가 어떤 나락으로 떨어질지에 대해서 좀더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좀더 강력하고 전면적인 대응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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