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준비를 위해 잠언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성서에서 잠언만큼 읽기에 부담 없는 책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평이하면서도 직설적인 어조로 되어있고, 삶의 순간 순간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한 대안들이 너무도 쉽게 제시되어있기 때문이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서론 부분(1~9장) 고찰을 계속하고자 한다. 잠언의 본문을 함께 읽으면서 따라와 준다면, 이하 소개될 글이 훨씬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가르침 : 악인들을 조심함(1,8~19)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교훈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부분은 『내 아들아』라는 호칭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특유의 도입구문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지역의 교훈문헌 안에 자주 발견되는 형식인데, 이로써 지혜운동이 시발된 자리가 「가정」이라는 가설이 증명되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가르침 중 가장 첫 번째로 등장하는 주제는 「죄인들에 대한 경고」이다. 죄인의 길은 피를 흘리게 하거나(11절), 피를 쏟아 붓게 조장하며(16절), 결국 자승자박으로 끝날 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8~19절).
지혜의 호소(1,20~33)
이어서 등장하는 부분은 첫 번째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되어있다. 아버지가 주는 교훈 대신 지혜가 의인화되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즉, 지혜가 사람처럼 하나의 인격적 존재가 되어, 자신을 외면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지혜에 대한 의인화는 당시의 현자들에 의해 창안된 특수한 문학적 장치라고 볼 수 있는데, 진리 혹은 지혜를 인격적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그 어떤 문체나 장르보다 역동적으로, 지혜를 「살아있는 것」으로 제시하는 효과를 준다.
사무라이에게 칼은 일종의 「의인화된 또 다른 자아」라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다. 비단 사무라이뿐일까. 지향하는 일을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 무엇보다 요청되는 것은, 마주해야할 사건 혹은 사물 안에 나의 의식을 통합적으로 투영시키는 작업일 것이다.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지 않고, 그 대상을 또 다른 자아로 인격화시키는 것, 잠언이 가르치는 최고의 성과를 얻기 위한 기본적 지침이라 하겠다.
두 번째 가르침 : 지혜의 결실(2,1~22)
이제 어조는 다시 아버지의 권고 형식으로 환원된다. 이 두 번째 가르침은 지혜를 추구함으로써 얻게되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략 두 가지로 정리되는데 1)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2) 삶에 대한 보장이 그것이다.
즉 지혜를 찾는 대가로 아들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를 알게되고(2,5), 이를 통해 축복이 내려진다(7~22절). 하느님은 지혜를 추구하여 당신을 경외하는 법을 깨달은 이에게 그의 삶을 도와주시고(7절), 행로를 보살피신다(8절). 현명함과 슬기가 그를 지키고(11절) 사악한 친구들로부터 구하시며(12~15절), 『반지르르한 말을 하는 낯선 여자에게서 그를 구하신다』(16~19절). 낯선 여자에 대한 경고는 단순히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서 보다 광범위한 기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즉 낯선 여인이란, 그들에게 익숙해온 하느님의 길과 상치되는 제반 모든 것을 의미한다. 낯설고 어색해 경계심을 유발시키지만 동시에 넋을 온통 빼앗아버릴 정도의 호기심을 갖게하는 모든 사물, 사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가르침 : 지혜와 주님께의 경외(3,1~12)
다시 『내 아들아』로 시작된 세 번째 가르침은 하느님의 계명을 『목에 묶고 마음에 새길 것』(3,3)을 강조한다. 하느님을 경외할 때만이 몸이 치유되고 활력을 얻기 때문이며(7~8절), 모든 재물과 소출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때에 재화의 축복이 주어지기 때문이다(9~10절). 지난번에 살펴본 욥기의 신학과 같이, 잠언에서도 하느님이 주시는 고통은 바로 인간에 대한 또 다른 사랑임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늘 옆에 있기에 잊기 쉬운 것들
늘 곁에 있기에 그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공기, 물, 가족, 잠언이 말하는 지혜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삶이 권태롭거나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지혜, 행복, 사랑이 내 곁을 떠나서가 아니라 내가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쉽게 만나지 못하는 탓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건 결국 소중한 것과 작별한 이후라는 것, 삶이 가지는 또 하나의 한계이며 비극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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