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술을 끊겠다』고 불쑥 말했다. 갑작스레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소 술로 인한 큰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주위에서는 물론 가족들조차도 그의 「단주선언」에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장신원(요한.58.서울 노원본당)씨의 단주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굳이 단주의 이유를 꼽으라면 극기와 희생의 시기인 사순절을 맞아 평소 좋아하던 조그만 것을 포기해보자는 데 마음이 미쳤을 뿐이다.
『술을 끊었다』고 주위 동료들은 물론 만나는 본당 신자들에게도 선언을 했다. 그리고선 『혹시 내가 술을 입에 대는 것을 본 사람에게는 20만원을 주겠다』는 말까지 하며 자신의 결심을 지키는데 힘이 되어줄 것을 당부했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웃기만 하던 이들도 그의 결심이 한 주를 넘기고 한 달을 넘기자 두고 보자는 표정들이다.
오래 전부터 남성총구역장으로 활동하다 울뜨레아 간사로, 최근에는 새 성당 신축을 추진하고 있는 본당의 성전관리분과장으로 누구 못지 않게 술자리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위치이지만 그의 결심은 확고한 모습이다.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장씨가 이런 모습을 보이자 주위에서도 모임이 있더라도 술자리를 자제하고 동참하는 분위기다.
술을 끊자 우선 눈에 띄게 건강이 좋아졌고 술을 왜 마셨는지, 누구와 만나서 술자리 가는 게 불가피했다든지 하는 설명이나 변명도 필요 없어졌다.
그러나 장씨의 이런 사순 실천은 이미 오래 전에 씨가 뿌려진 셈이다. 꼭 십년 전, 사순시기를 앞두고 금연을 선언하고 오늘까지 지켜온 것이다. 자신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담뱃값과 용돈을 아껴 가족들을 위한 1000만원짜리 적금을 들었다. 자신의 결심이 이어져 적금을 타게 되면 가족들과 성지순례를 떠난다는, 당시로서는 스스로도 미심쩍은(?)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 결심을 보기 좋게 실행에 옮긴 덕에 장씨 가족은 올 여름 가족여행에 나설 꿈에 부풀어 있다.
『술 담배를 끊자 이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준 고통을 돌아보게 되고 다시 한번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돼 좋은 것 같습니다』
이런 장씨의 모습에 아내 홍순자(막달레나.52)씨도 자신의 시간을 쪼개 봉사할 곳을 찾는 등 부창부수로 화답하고 있다. 지난해 결혼한 아들 석환(가브리엘.26)씨 내외도 취미활동 시간을 줄여 가난한 이웃을 한번 더 돌아보고 기도로나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 가기로 했다.
또, 가족이 함께 매일미사를 봉헌하고 가족기도 시간을 가지며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등 사순시기를 그 어느 때보다 의미있게 보내고 있다.
부활대축일을 준비하는 사순절을 맞아 단주 단연 단식 등의 희생과 TV 시청이나 컴퓨터게임, 골프 등 취미시간을 줄이는 등 다양한 극기를 통해 이웃과의 나눔을 모색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다. 많은 본당이나 교회 내 단체들은 함께 하는 부활대축일 준비를 위해 「매일 성서읽기표」에 따른 성서읽기와 성서쓰기 등 「영성생활」안내 자료나 사순 기간 중 손쉽게 동참할 수 있는 「기도 및 실천사항」 등을 신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사순절을 맞아 실천에 옮기는 조그만 극기와 희생은 스스로를 성찰과 회개로 이끌 수 있는 좋은 길임은 물론 이웃사랑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올 사순절에는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희생을 통해 각자의 마음 속에 뿌려져 있는 나눔의 씨앗을 싹틔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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