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만나 뵈니 정말 반갑네요』라는 말에 어르신은 미소를 지으시며 『너무 고마워서』 하시며 과자봉지를 내미셨다.
깔끔한 차림새와 밝은 표정이 잘 지내시는 것 같아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아흔이 훨씬 넘은 이 어르신은 가출을 해서 며칠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셨던 분이셨다.
당시 어르신은 『사람취급을 하지 않아서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어. 길에서 세상을 마칠거야』 하시며 울컥울컥 눈물을 삼키셨다.
어르신은 유일한 핏줄인 따님과 함께 살고 계셨다. 몇 년 전부터 식사를 방에 따로 차려주고 혼자 드시라고 하더니, 어느 날 TV를 방에 넣어주고 손자 공부 방해되니 나오지 말라고 했단다. 가족들 소리에 반가워 거실에 나가면 이내 모두 방으로 들어가버려 거실이 휑하니 빈다고 하셨다.
『상 차려 놨어요』라는 말이 하루종일 듣는 말 전부라고 하셨다. 친구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 마음 터놓고 얘기 할 사람 하나 없는데 가족들은 마치 벌레 보듯이 피하니 더 이상 있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 어르신의 딸은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고 하더니 아버지가 바로 그렇다』며 사위나 손자도 생활이 바쁜데 얼굴만 마주보면 사람취급 안 한다고 소리부터 지르니 누가 곁에 있고 싶겠냐고 했다. 그나마 얘기를 할라치면 한도 끝도 없이 따지고 억측을 부리니 피하게 된다며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나이가 듦에 따라 의지와는 다르게 점차 기능이 퇴화되고 성격도 변하게 된다. 그래서 같은 말과 상황 아래서도 젊은이들에 비해 더 노여워하고 서러워할 수 있다. 노년기의 심리적 특성상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방법이나 행동이 옳지 않아도 자기에게 익숙한 태도나 방법을 고수하려 하므로 자녀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사실 어르신의 속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 세상 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내가 이러겠냐? 서럽고 외로워서 이렇게 말하면 알아주겠지」 하는 심정이었는데 서로 오해까지 겹치게 된 것이었다.
친자식이기에 격의 없이 대했는데 이해하지도 못한다고 느꼈을 때 더 이상 그 곁에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사위의 『우리가 한 번 더 노력해보죠. 아버님 모시러 가겠습니다』라는 말로 일이 해결되기 시작했다. 아마 그동안 한번만의 노력이 아니었을 것이기에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자식이 부모에게 무조건적으로 정성을 다하기를 요구하면 너무 무리한 것일까? 그러나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위하는 진심어린 마음이 있으면 조그만 노력으로 갈등이 해결될 수 있음을 할아버지 가족은 보여주었다.
하늘 아래서 아무 쓸모없다고 느끼며 생의 마지막만을 기다리는 어르신에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살펴주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다면 그 어르신은 행복하게 마지막을 준비하실 것이다.
『늦어도 기다렸다가 사위와 함께 식사 해』라며 쑥스러운 듯 웃으시는 어르신의 얼굴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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