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는 단연 탄핵입니다. 이 사태를 보면서 안타까운 점은 정치인들이 너무나 감정적이고 계산적인 대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과 나라는 안중에도 없고 다만 선거에서의 유 불리 그리고 정치 상황의 타개만이 전부입니다. 여 야 모두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여유, 그리고 행동하기에 앞서 나라와 국민이 가야 할 진정한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아쉬워지는 때입니다. 그러기에 죄녀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면서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예수님의 오늘 모습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가슴깊이 새겨야 할 우리시대의 교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은 간음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과 간음녀가 만나게 된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검은 의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간음녀는 기혼녀는 사형으로, 약혼녀는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 복음의 여인이 약혼녀일 경우 당연히 돌로 쳐 죽이면 되는데 문제는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던 로마는 사형권을 이스라엘에 주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간음녀를 돌로 쳐 죽이는 문제는 결국 이론적인 해결에만 머물 수밖에 없는 문제였지만, 이스라엘은 종교사회라는 점이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율법대로 돌로 치라고 한다면 자비에 대한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부인과, 또 사형권을 가진 로마 정부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동정을 느끼고 불쌍히 여겨 용서하라고 하면 예수님은 율법을 거스린 자로, 또 간음죄를 사형으로 처벌하지 않았던 로마의 지지자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는 미묘한 문제였습니다.
바로 이 미묘한 문제 앞에서 보이신 그분의 행동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 계신 행동」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고발자들의 죄를 나열했다는 설, 혹은 다니엘서에 하느님의 손가락이 쓴 글을 썼다는 설(다니 5, 24), 아니면 예레미야서 17장 13절이었다는 설, 또는 아무 의미 없는 낙서형식의 글이었다는 설들이 있지만 어느 하나 확실한 것도 없고 확실한 사실은 그 내용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내용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점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썼던 그 행동의 의미인데, 필자는 두 가지로 그 의미를 추측해 봅니다. 하나는 여인의 죄를 마음에 새기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땅에 쓴 글씨는 종이나 마음에 쓰는 글씨와는 달리 잘 지워질 뿐만 아니라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간음녀 앞에서 보인 땅에 무엇인가를 쓰는 예수님의 행동은 여인의 죄에 대해 우리 모두 땅에 쓴 글씨가 가지는 특성처럼 빨리 잊으라는 요청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뒤에 나오는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긴밀히 연결되는 점이 있기에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의미는 판단 유보, 한 박자 쉼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평범한 사람과 성공한 사람의 차이 중 하나는 자극과 반응의 사이에 있다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극과 환경 사이에 공간을 만들지 않고 상황에 따라 행동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화나게 하면 화를 내고, 환경이 기쁘게 하면 기뻐하는 정도의 삶입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만듭니다. 그 공간에 여러 가지 선택가능한 대안과 가치를 자리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환경과 자극을 넘어서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화나게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선택 가능한 행동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때로는 똑같이 화를 낼 수도 있지만 그 행동은 자극에 반응한 화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화라는 것이 차이입니다. 아마 예수님이 죄녀를 만나면서 가졌던 행동의 의미도 상황과 행동 사이에 공간을 만드는 의미를 가지는 행위가 아니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이제 결론을 내려 보면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타인의 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매우 무디게 작용합니다만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날카롭고도 신속하게 반응합니다. 복음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경계입니다. 타인의 죄에 대해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생각하라고, 그리고 타인의 죄를 가슴에 새기고자 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아마 이러한 삶은 타인을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과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고자 하는 연습을 통해 자신을 절제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서 사순절의 첫 주제인 자기 절제의 중요성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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