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지난해 남동생이 어머니를 학대한다고 하소연했던 분이 다급하게 전화를 주셨다. 새벽 4시쯤 아들이 어머니방 문을 부수고 들어가 난동이 시작됐단다.
여태껏 심한 욕설과 위협도 견뎌왔지만 이번엔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어 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보고 전화기를 부수더니 거실로 끌고 나가 칼까지 집어들고 죽이겠다는 위협을 했단다. 나중엔 도망가는 어머니를 붙잡아 구석으로 다시 몰아넣고….
아들이 방심한 틈을 타 맨발로 뛰쳐나오신 어머니는 당신 딸도 못 알아보시는 모습이었다. 유리파편, 부서진 문짝, 여기저기 뿌려진 핏자국 등이 담긴 사진을 보며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짐작이 갔다.
몇달 전만 해도 우리에게 딸들이 전화한 걸 나무라며 『아무 일도 아니다. 일이 잘 안 돼서 그런 것』이라며 알려지길 꺼리던 분이 『그대로 두면 안되겠다. 이러다 내가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 아들 살인자 만들겠다』면서 처벌에 동의하셨다고 한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일이 늘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극한 상황에 오기까지는 벌써 여러 번 위급한 사태를 넘긴 후가 보통이다.
그동안 어르신이 겪었을 고통을 어찌 짐작이나 할까. 재판정에서 합의의사가 없다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형제들을 보면서 그 말이 아들에게는 비수처럼 박혔으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고 답답해졌다.
피를 나눈 형제들이 선처를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했다.
썰렁한 구치소에 갇힌 자식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어머니, 자식이 고통을 당하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잘 수 있냐고 눈물지으시는 어머니를 아들은 더 원망하고 있는 건 아닌지. 결론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잊고 싶은 장면이다.
그러나 이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된다. 어떻게든 가족이 서로의 깊은 상처와 아픔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도와야 한다는 마음에 기도시간마다 기억하게 된다.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고 하지만, 이런 일이 설마 얼마나 있을까. 평범한 가정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의외의 일이 너무 많아 『아니다』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건강한 가족이란 그냥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여러 모양의 갈등이 쉽게 발생할 소지가 많은 현실이다.
부모.자녀세대 모두 의무와 책임만 다하면 된다는 형식적인 관계보다 자발적이고 기쁜 마음으로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오늘날 고통을 받는 부모와 자녀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때다.
시계를 미래로 돌려 몇 십년 후를 상상해 보자. 과연 예전의 약속대로 내가 살고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성가정이 이 세상에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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