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다룰 주제들
지난 번 글에서 가톨릭교회를 사랑하는 선교사 신부의 절절한 「현장 르포」는 독자들에게도 매우 고무적인 소식이었다. 악조건 속에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헌신적으로 뛰고 있는 누군가가 지구 저편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취급할 주제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한국 가톨리시즘의 현재 / 한국 가톨리시즘의 부활을 위한 길 / 한국천주교회 선조들의 위대한 신앙 / 종교다원주의 시대의 가톨릭 신앙 / 가톨릭교회의 세계관(신관, 우주관, 인간관) /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와 행복의 길(신흥영성운동에 대한 가톨릭적 대안) / 가톨릭신앙 입문(『저는 초신자거든요』) / 가톨릭교리 핵심(『가톨릭 신자는 무엇을 믿나요』) / 가톨릭신자 생활(기도, 교회생활) / 가톨릭신앙의 리모델링(새 마음, 새 능력, 새 사랑, 새 양심).
이들 주제들 사이에는 내부의 논리가 있다. 각 주제에 관한 독자제현의 고견을 환영한다(이메일 samok09@cainchon.or.kr).
4대 메가트렌드
이제 오늘날 한국 가톨리시즘에로 관심을 돌려보자. 이를 논하려면 먼저 그 시대적 배경을 짚어보는 것이 순서이겠다. 왜냐하면 가톨리시즘은 「시대」 속에서 가톨릭 정신을 구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복잡한 사회 변화를 그대로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은 그 변화의 주요 흐름, 곧 메가트렌드(megatrend)에 주목해 맥을 짚는 것이다.
21세기 가톨리시즘의 배경으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메가트렌드들을 살펴보자.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메가트렌드는 지구화, 정보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그리고 다원문화 등 4가지이다. 이들은 매우 의미 있는 시사점을 주는 요인들이므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설명이 나오더라도 깊이 헤아려주시기 바란다.
(1) 지구화
최근 수십 년간 세계질서의 변동과정에서 가장 현저한 현상은 「지구화」(globalization)이다. 80년대 후반부터 서구 학계의 유행어가 된 「지구화」는 지구 전체의 「상호의존성 증대」와 의식(意識)의 지구적 차원에로의 「지평확장」이라는 두 가지 핵심 측면을 지닌다. 실제로 우리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범지구적으로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대, 그리고 사유지평이 범지구적으로 확장된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제국주의의 기승, 글로벌 스탠더드, 범지구적 생태위기 등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지구화는 다음과 같은 현상들을 수반한다.
-지역화(localization): 지구화는 세계 전 지역을 정교한 상호 의존성의 망 안에 편입시킴으로써 지역 수준의 사안(事案)들을 세계화시킨다. 이렇게 해서 국가, 민족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초문화적 접촉이 빈번해질수록 지구질서 내에서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확인하려는 특수주의적 욕구도 강렬해진다.
결국 지구화는 정체성의 위기감을 초래하고 그 반작용으로 「지역화」(localization)를 초래한다. 지역간 경계(boundary)가 무너지면서 구심적 통합(지구화)과 원심적 분열(지역화)이 동시에 발생한다. 이는 역설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존 나이비트는 지구화와 지역화의 병행, 곧 통합과 분열의 2중 구조를 「글로벌 패러독스」(global paradox)라 표현하였다.
지역교회들의 범세계적 교류 및 일치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소공동체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는 현실이 바로 교회적인 차원에서 관찰되는 「지구화」 속의 「지역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양극화(polarization): 가진 자는 점점 더 많이 갖고 못 가진 자는 점점 덜 갖게 되는 이 「양극화」는 경제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두드러진 미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식과 정보를 갖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양질의 지식과 정보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다수는 지식과 정보를 보유하지 못한 채 상대적으로 지식정보 빈곤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런 현상은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20대 80의 구조가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 한다. 상위 20%가 계란의 「노른자」를 차지하고 하위 80%가 나머지 「흰자」를 놓고 아귀다툼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양극화 현상은 영성적인 차원에서도 발견될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칼 라너도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가리켜 『오늘날에는 신비주의자가 되든지 비신앙인이 되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영성」의 질도 시간이 갈수록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영적으로 충만한 사람과 영성적으로 빈핍한 사람의 차이가 벌어질 것이다. 「영적인 그리스도인」과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의 차이가 두드러질 것이다. 영성이 있는 자들은 더욱 간절히 갈망하여 풍성해지는 반면 없는 자는 있던 것마저 빼앗기는 영적 빈곤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결국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 29)는 예수님 말씀이 꼭 들어맞는 형국이 될 것이다.
-범지구적인 연대 활동: 생태 환경 위기, 핵전쟁 발발 위험, 그 밖의 재난과 재앙 등 파멸에 대한 지구 공동의 위기의식은 마침내 범지구적인 연대운동의 조직을 촉진하였다. 지구화의 복합적인 구조, 그로 인한 모순과 균열들은 다양한 형태의 반체제적 운동들을 발전시켜왔으며, 국제적 연대운동으로 조직화하였다. 환경 위기를 위시하여 에이즈, 마약, 이민, 피난민, 빈곤, 질병, 문명퇴치 등과 같은 쟁점들은 지구 수준의 대대적인 노력 없이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가톨리시즘은 지구화가 수반하는 이런 현상들 가운데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고 그에 부응하여 가톨릭 정신을 구현하려는 시도들의 총화(總和)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면면들을 살피는 일은 다음호로 미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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