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내보일 일이라고…』
수 차례의 전화에도 꿈쩍 않던 이진섭(다미아노.91.서울 미아3동본당) 할아버지는 기어이 기자가 집까지 찾아가자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흔을 넘기기까지 20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미사를 드려온 할아버지는 별난 일도 아닌데 주위에서 그렇게 보는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지난 1982년 서울 미아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할아버지는 지금껏 조그만 노트 한 권을 챙겨 미사에 참례해왔다. 성서나 주보도 아니고 노트를 들고 미사를 드리는 할아버지를 보고 이상하게 여기던 이들도 그의 노트를 들여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의 노트에는 손수 필사한 그 날의 독서말씀과 화답송, 영성체송 등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미사를 준비하며 매일 10시간 정도를 필사하는 일에 혼을 쏟는다. 노안으로 오랫동안 성서를 들여다보기가 힘들어 1시간 필사하고 30분 쉬고 다시 1시간 성서를 쓰는 식으로 이어지는 그의 작업은 흡사 고행하는 수도자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든다. 그렇게 집중을 해도 1시간에 성서 한쪽을 쓰기가 쉽지 않다.
할아버지의 이런 삶은 신앙에 대한 갈증이 바탕이 됐을 지도 모른다. 고향인 평안남도 한천면을 떠나 단신으로 월남한 후 첫 보금자리를 튼 충북 진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 할아버지는 힘겨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주일이면 걸어서 20리 거리의 공소를 오가며 신앙을 다졌다.
『지금은 성당이 가까우니 얼마나 좋아요』. 상경 후 할아버지는 진천에 살 때부터 틈틈이 해오던 성서 필사에 본격적으로 나선 셈이다. 하루 10여쪽의 성서를 쓰고 나면 할아버지 책상에는 수북히 종이쪽들이 쌓인다. 그렇게 1년이면 신약을 3번 정도 쓰게 된다.
『성서를 쓰고 있다보면 잡생각이 없어지고 정신이 맑아져요. 어떻게 하루가 지나가는 지도 모르겠고…』. 그런 그의 열성 때문일까,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누구 못지 않은 건강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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