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인식 세계에는 오감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세계와 직관이나 영감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 합니다. 합리성을 강조하는 현대는 오감의 세계에만 중요성을 두고 오감을 통해 모든 세계를 해석하려 합니다만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세계에는 오감만을 통해서 파악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고유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토마 사도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요한 복음에 나오는 유일한 행복선언문으로서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믿어야만 하는 사람들, 즉 미래의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보다 불행한 것이 아니라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선언함으로써 신앙에 있어 예수님에 대한 직접체험이 신앙의 중심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이야기는 신앙의 세계에 대한 접근방법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합리적이고 감각적인 방법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 합니다. 마치 토마사도의 자세처럼 보고 만지는 자세입니다. 물론 그러한 자세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영역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모습입니다만 관계적이고 영적인 영역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영역에서는 오감을 통한 체험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필요하게 됩니다. 토마 사도께 하는 예수님의 말씀,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자세입니다. 오감 너머에 있는 무엇, 체험을 통한 확인과 이해를 넘어서는 만지고 확인하기 힘든 사랑과 믿음의 자세가 그러한 세계의 접근방법입니다.
그러나 필자가 오늘 복음을 보면서 묵상하고자 하는 바는 토마사도를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하고 말하자 토마스는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대답합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서운함을 느끼고 그러한 마음을 표현할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사실 보다 관계가 더 중요할 때가 있고, 사실적인 이해보다 관계적인 사실을 요구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부들은 경험 합니다만 누구와 싸웠을 때 남편이 자신을 감정적으로 편들어 주지 않고 싸움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상대편의 잘못과 자신의 잘못을 낱낱이 따져 가르치려 할 때 서운함을 느끼는 모습이 이러한 사실의 단적인 예입니다.
예수님도 아마 비슷했으리라 상상해 봅니다. 3년을 같이 생활했고, 또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미리 예고한 제자들이었기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반응을 기대했을 것이고, 이러한 면에서 보면 토마 사도의 이야기는 예수님에게 조금은 서운하게 들렸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은 그러한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토마사도가 원하는 바를 통해 당신의 마음, 서운함을 넘어서는 진정한 의도를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만지고 확인하게 할 뿐 아니라 한 단계 더 성숙하도록 토마 사도가 가야할 신앙의 길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넘어섬」 「타인의 욕심 배려」 「일차 감정 뒤에 숨은 진정한 마음 표현」 예수님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교훈입니다.
사실 인간은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 의도가 나쁜 수단에 의해 실패하는데, 이 나쁜 수단의 대표적인 것이 감정적인 일차적인 반응입니다. 예를 들면 공부안하는 아이를 야단치는 엄마와 거기에 반항하는 아들입니다. 여기서 어머니가 아이를 야단치는 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라는 너무나 좋은 의도입니다만 그러나 그러한 의도는 결국 「야단」이라는 「감정적이고 일차적인 행위」 때문에 오히려 관계 악화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아마 어머니가 힘들겠지만 속상한 마음을 다스려 「야단」 대신 좀 더 성숙한 모습, 당신의 사랑이라는 속마음을 전했다면 물론 공부는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관계는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고, 어머니의 마음과 공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다스리고 타인의 바람을 배려하는 이러한 모습은 물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요, 때로는 계산적인 세계 속에서 현실적인 손해를 가져 올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실은 비록 힘들다 하더라도 겉마음이 아닌 속마음, 즉, 일차 감정 안에 숨어 있는 진정한 마음을 보고, 이러한 선한 마음을 타인의 감정을 배려해 표현 할 수 있을 때만이 우리의 선한 의도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점이 선한의도를 세상에 실천해야할 우리 신앙인들이 토마사도를 대하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발견해야 할 교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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