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한국 가톨리시즘에 영향을 끼치는 21세기 메가트렌드의 첫 번째로서 「지구화」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러면서 지구화가 「지역화」, 「양극화」, 「범지구적 연대」를 수반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면 이 지구화는 어떤 가톨리시즘을 요청하는가? 곧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가톨릭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제 이 물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지구화 시대 가톨리시즘의 기조정신
지구화는 교회에게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제공한다. 이는 「새 하늘 새 땅」 곧 진정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할 기회이며 그런 만큼 전폭적인 투신을 요청하는 도전이다.
지구화 시대에 가톨릭교회가 꿈꿀 수 있는 「새 하늘 새 땅」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바로 박애(博愛)의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시대이념이 「자유」요 20세기의 시대이념이 「평등」이었다면, 21세기의 시대이념을 「박애」라고 내다보는 이들이 많다. 설득력 있는 전망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 봉건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19세기 서구 사회가 갈망했던 것은 「자유」 였다. 말할 것도 없이 20세기 시대이념은 전세계적으로 「평등」이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뒤늦게 그 대열에 편승하여 20세기에 「자유」와 「평등」을 한꺼번에 추구한 격이 되었지만 워낙에 속전속결에 능한 민족성 덕택에 얼추 전세계의 시대 이념에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고 보인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 시대이념이 「박애」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박애」가 지구화 시대의 정신가치로서 제격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구화 시대 가톨리시즘의 기조정신은 당연히 「박애」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인 요청은 가톨릭교회 나아가 그리스도교회에 엄청난 기회이며 도전이다.
세상의 어떤 종교 창시자가 예수 그리스도만큼 「박애」 곧 「너른 사랑」을 강조한 적이 있던가.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 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6, 43~48)
원수까지 심지어 박해자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 이야 말로 박애의 정수가 아닐 수 없다. 하느님 사랑이 「완전」하듯이 사랑에 있어 「완전」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다.
그리고 세상의 누가 예수 그리스도 만큼 몸소 「박애」를 살았던가. 당신 「살」을 영적 음식으로, 당신 「피」를 죄의 용서를 위한 계약의 징표로 내어주시고 마침내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그 진실을 입증하였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큼 우리의 심금을 울린 사랑이 역사 이래 어디 있었던가. 이렇게 볼 때 「지구화」 현상이 「박애」를 시대 이념으로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톨리시즘의 구현을 위해서 멍석이 깔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톨릭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열린 판으로 가서 가지고 있던 보따리를 푸는 것이다.
구체적 과제들
지구화라는 메가트렌드는 가톨릭교회에게 박애를 기조정신으로 삼을 것을 요청하는 동시에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과제들을 부과한다. 이들은 지구화가 수반하는 세 가지 현상과 관련된 과제들이다.
첫째, 지구화와 지역화의 부름에 동시에 응답하는 것이다.
지구화는 그 반대급부로 지역화를 동반한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이 지구화와 지역화는 교회에 외양상 모순된 과제를 부과한다. 즉 세계 전체수준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세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반면, 지역주의의 강화에 「지역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부과한다.
가톨릭교회는 바티칸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지구화시대의 가톨릭교회는 특히 이 조직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세계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지역 교회들 간의 유기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힘써야 한다. 전쟁, 기아, 재난 등 교회가 앞서서 도움의 손길을 뻗쳐야 하는 일이라면 전세계 가톨릭교회가 한 몸처럼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한편 「지역화」 또한 교회가 가야할 길이다. 지역화는 방향성이다. 더 작은 것, 더 구체적인 것에로 나아가려는 힘이 「지역화」에 내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가톨릭교회는 이 부름에 충실하여 아주 작은 교회의 기초세포들이 생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바로 요즈음 모든 교구들이 공을 들이고 있는 「소공동체」에 해당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역화」는 고유성을 보존하기 위한 생존본능의 발로이다. 곧 고유성을 살리는 것이 지역화 과정의 급선무이다. 소공동체가 참으로 사는 길도 각 소공동체가 고유의 색깔과 향기를 발산하는 것이다.
둘째, 「80을 위한 우선적 선택」(option for the 80)을 하는 것이다.
지구화가 동반하는 「양극화」현상은 20대 80의 구조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곧 상위 20%가 모든 영역에서 알짜배기를 차지하고 80%가 그 나머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경제에서부터 영성에 이르기까지 적용되는 현상이다. 이는 사실이다. 문서복음화를 사명으로 알고 있는 필자는 도처에서 이 사실을 확인한다. 가난한 동네일수록 영성에 대한 목마름 자체가 시들해진다. 예외야 있겠지만 경제의 부익부빈익빈은 그대로 영성의 부익부빈익빈으로 이어진다. 요즈음 수준 있는 영성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경제력이 뒷받침해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교회는 80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들을 위해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 보다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든 영적으로든 그들을 편들고 그들을 먹여 살릴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셋째, 공동선 구현에 앞장서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여러 가지 골칫거리를 안고 있다. 특히 정치적으로 테러의 공포에 전세계인이 떨고 있다. 한마디로 「죽음의 문화」로 압축할 수 있을 만큼 죽음의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과거 자연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어왔던 그리스도교회가 「생명 유기체」 보전에 앞장서는 것은 교회의 신뢰성 회복을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 어떠한 사안이 되었건 교회는 공동선 구현의 최일선에서 가장 궂은 일을 자청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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