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마다 우리 사회는 수많은 부조리와 이로 인한 분열을 경험해왔다. 그러나 선거는 역설적이게도 분열을 봉합해 화합과 하나됨으로 나아가는 민주주의의 축제이다.
이런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민주주의의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정치 발전을 위한 방안을 탐구하며 정치 생활에 참여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바오로 6세,「팔십주년」 24항 참조)
다가온 선거는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한 모색을 위해 중요한 시기이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정치 공동체 안에서의 자신의 특별한 소명을 돌아보는 장을 마련한다.
『맨날 그 모양인데요 뭘…. 투표는 해서 뭐하나 싶어요』
『지금까지는 별 생각없이 투표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충분히 고민해보고 할 생각입니다』
다가온 4.15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조건 아래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늘 있어왔던 이런 모습들이 과거와 다른 점은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정치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는 데 있다. 특히 이번 선거는 탄핵 정국과 맞물리면서 수시로 다양한 변수가 등장해 선택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예상치 못한 이런 급격한 변화 양상에 국론분열을 염려하는 시각 또한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같은 흐름 속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최근 조사 결과 유권자의 84.3%가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의향을 밝히는 등 과거의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어느 정도 벗는 모습이어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는 물론 미래에 펼쳐질 정치가 유권자들의 선택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투표에 따르는 역사적 책임도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아울러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다양한 정치?사회현상들이 기존의 정치적 선택과 이에 대한 평가를 「맹아」로 한다는 점에서 다가온 선거의 중요성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가깝게는 제16대 국회만 보더라도 어렵지 않게 이런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다. 16대 국회는 지난 4년 동안 교회는 물론 많은 국민이 반대한 「이라크 파병」과 같은 건은 번개처럼 처리하면서, 「생명윤리법」 개정과 같은 문제는 차일피일 미루다 끝내 무산시켜버렸다. 또 「사형폐지 특별법안」은 신자의원을 비롯해 과반수가 넘는 155명의 국회의원이 직접 서명했음에도 국회 본회의에 상정도 못해본 채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이처럼 국민들이 주어진 순간마다 제 목소리를 내지 않을 때 잘못은 그 자체로 그치지 않고 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거나 부패를 조장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져왔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정치판의 모습 때문에 여전히 선거에 회의를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울러 이런 현실은 신자들의 몫을 새롭게 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냉소적 흐름에 대해 교회는 『정치 참여 자체는 인간의 존엄성이 요구하는 사항』(지상의 평화 73항)임을 줄기차게 강조해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교회는 『모든 국민은 공동선의 촉진을 위하여 사용하는 자유 투표의 권리와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사목헌장 75항)며 유권자로서 정치 참여가 사회복음화를 위한 모든 신자들의 몫이며 하느님나라를 앞당길 수 있는 길임을 들려주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지난해 10월 필리핀 주교단과의 만남에서 『사회와 정치 발전을 위협하는 부패의 죄악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면서 부패한 사회를 바꾸는데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따라서 정치를 통해 공동선의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임을 재확인하고 정치 참여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선거는 부패와 당리당략으로 오염된 정치에 신선한 변화의 물을 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도 매 선거 시기마다 모든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을 강조해오고 있다. 주교회의는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영수 주교 명의로 「선거와 공동선」이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해 『마음에 드는 후보나 정당이 없다 해도 차선을 찾아 투표하여 국민의 힘으로 정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적극적인 선거 참여를 촉구한 바 있다.
최주교는 이 담화에서 이성적인 판단으로 신성한 권리를 행사할 것을 요청하고, 특별히 「정당과 후보자가 공동선의 실현에 이바지해 왔는지」와 「정책이 교회 가르침에 부합하는지」를 분별의 요건으로 삼을 것을 당부했다.
따라서 신자 유권자들은 사회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푯대로 사회복음화의 관점에서 선거에 임해야 한다. 또 후보들의 정책과 공약을 하나하나 따져 그 가운데 교회의 가르침과 정신이 얼마나 녹아있는지 평가해보고 투표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교회가 줄기차게 강조해온 ▲생명 ▲인권 ▲평화 ▲환경 ▲가정 ▲가난한 이들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한 교회의 정신과 가르침을 기준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나라를 향한 소중한 씨앗들은 이미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있다. 그러나 씨앗을 품어 키울 들판으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리 튼실한 씨앗도 말라버리고 만다.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 속에서 제 몫을 찾아나갈 때 하느님나라를 앞당길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장이 이번 17대 총선이다.
■ 송춘지(마르가리타.62.서울 이태원본당)
“무관심으로 보낸 세월 부끄러워 국민의 뜻 존중하는 사람 뽑아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 때 투표를 하지 않고 너무나 쉽게 기권표를 던져온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는 핑계로 투표일을 야외에 나가 노는 날로 보내고 한 표의 권리를 쉽게 내던져 버렸던 내 모습이 부끄럽게 다가온다. 각자의 한 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얼마나 큰 일이 초래될 수 있는지 새삼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국민들로 하여금 무섭도록 집요하고 추한 권력의 모습과 함께 되살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많이 지니도록 해온 게 사실이다. 아마 대다수의 국민들도 나와 같은 심정일지 모르겠다. 실상 이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국민들을 분열로 몰고 서로 미워하고 불신하게 만든 많은 책임이 정치인들에게 있지 않을까 싶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을 국회로 보내준 국민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오늘날 정치에서 느끼는 참담함은 덜했을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의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도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당시의 후보들 가운데 딱히 내 마음에 드는 후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 결과를 지켜보면서 내 가슴속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와 무관한 듯 진행된 역사의 행보 속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희망을 엿본 것이다. 그리고 그 후 1년, 우리나라 정치가 국민들에게 보여준 모습은 실망과 절망의 연속이었고 이로 인해 나는 이 나라의 국회에 희망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품기에 이르렀다.
가톨릭신자들은 미사 때마다 『내 탓이오』라고 고백을 한다. 정치인들이 이렇게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이에 역행하는 것은 비단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나와 같이 정치에 무관심했던 국민들의 잘못이 컸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집단 이기주의나 지역주의에 물들지 않은 사람, 국민의 4대 의무를 기본으로 지킨 사람, 인격적으로 성숙하여 공동선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 정당의 이익보다는 국익을 생각하며 민의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 법을 악용하지 않는 사람이 뽑혀 국회로 가기를 기도할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 그러한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지혜를 우리 국민에게 주십사 기도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소중한 나의 한 표를 꼭 행사하겠다.
■ 김은선(크리스티나.29.서울 잠실본당)
“주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 만들려 노력하는 후보에게 나의 한표 행사할 터”
나의 첫 번째 투표 참여는 97년 대통령 선거 때였다. 당시 대학 2년 생.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예뻐지는 것이 작은 소망인, 철없는 명랑 소녀였다.
내게 정치는 어른들의 전유물일 따름이었다. 정치 뉴스는 거북한 소음에 불과했으며,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이겠거니, 국회의원은 헐뜯고 싸우고 뒤로 배불리는 파렴치들이겠거니, 학생 운동은 학생회 존립을 위한 이벤트겠거니…라며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나의 한 표는 부모님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돌아갔다. 내 친구들도 그 부모님과 같은 고향 말을 쓰는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 후로 두 번의 국민투표가 더 있었지만 역시 별 의미를 주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국민의 대표로서 해선 안될 일을 저질렀고, 국민들은 또 다시 실망했으며, 내 인생은 그와 상관없이 흐르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나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게도 현실적인 문제들이 생겨났고, 부모님, 형제, 친구들이 안고 사는 아픔이 무엇인지 살피게 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으로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아니, 보고 있었지만 나와 상관없다 여겼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직한 아버지들, 일자리 없는 청년들, 이산 가족들, 버려지는 아기들, 한 뼘 높이 층계에서 한숨쉬는 장애인들,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 「사회적 문제」라는 거창한 이름에 이질감 마저 느껴지는 이야기들이었지만, 내 주변에서, 때론 나 스스로에게서 이러한 모습들을 발견하면서 내 가슴은 전에 느끼지 못한 아픔으로 울렁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소중한 노력은 그런 아픔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이었다. 내 영혼이 주님의 사랑으로 위로 받은 것처럼, 그들에게도 주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가슴을 허락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곧 국민에게 주어진 가장 적극적 정치 참여 수단인 「국민 투표」를 하게 된다. 이제 나는 아픔과 사랑을 알게 된 가슴으로 한 표를 행사하고자 한다. 나의 한 표는 「주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이를 찾아갈 것이다. 밝은 눈과 열린 귀를 가지고 가슴으로 느끼며, 용감하게 실천할 수 있는 후보를 찾아낼 수 있는 혜안(慧眼)을 허락해 주시길 기도한다.
후보 한 사람이 내일 당장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만, 그가 진정한 주님의 도구로 쓰일 수 있기를 기도할 것이다. 그의 노력과 나의 기도가 이뤄낼 작은 기적을 기대해 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