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띵동』
초인종 소리에 나자렛집 아이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오늘 군인 선생님이 오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6시30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들. 이들은 바로 육군기계화 학교 소속 1705부대 여영철(라파엘.36.광주 쌍암동본당) 상사를 비롯한 군인 선생님들이다.
여상사는 1996년 부대 자매결연 시설인 장성 나자렛집(책임=전숙자 수녀)과 인연을 맺은 뒤, 동료들의 정성을 전달하는 일을 해왔다. 나자렛집은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6학년생까지 여자 어린이 10명이 생활하는 청소년 복지시설.
처음엔 단순히 설이나 추석 등 특별한 날에만 방문해 선물을 전달하는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여상사는 소극적인 봉사보다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2001년 12명의 간부들과 함께 후원회를 만들고 월급에서 1만원씩을 적립, 나자렛집 아이들을 돕고 있다.
또 「농촌지역이어서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줄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말을 전해 듣고 지난해 3월부터는 부대원 가운데 8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아 학습봉사를 하고 있다. 대부분이 편부, 편모, 미혼모 등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기에 군인 선생님이야 말로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요 벗이다. 또한 수학, 사회, 과학 등 전과목을 아우르는 척척박사요, 친근한 삼촌이 되기도 한다.
식당, 놀이방을 겸하고 있는 공부방에서 여상사를 비롯한 군인들은 학년별로 2명씩 전담해 2시간을 공부하고, 30분은 간식 등을 나눠 먹으며 오손도손 얘기를 나눈다.
재밌다며 이것저것 물어보며 공부에 열중인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장난꾸러기 혜린(9)이는 오늘도 공부는 뒷전, 군인선생님과 장난치느라 바쁘다. 시험결과가 좋지 않아 울상이던 다혜(12)는 『다음에는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적 나오면 되지』하며 다독거려주는 군인 선생님의 말에 금방 얼굴이 환해진다.
이제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간식시간. 아이들은 『2시간동안 의자에 앉아있었더니, 머리가 아프다』며 군인 선생님을 붙잡고 재밌는 얘기를 해달라며 아우성이다. 『민지는 공부할 때는 지겨워하더니 쉬는 시간엔 제일 신난 것 같다』는 등 군인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 속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부대 선임병의 소개로 나자렛집을 알게됐다는 박충현(22) 상병은 『이곳을 처음 찾았을 적엔 부모와 떨어져있는 아이들이라 솔직히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겁부터 났지만 지금은 오히려 허물없이 따라주며 밝은 웃음을 지닌 아이들로부터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나자렛집 전숙자 수녀는 『선생님들이 오는 날이면 아이들이 깨끗이 씻고 예쁜 옷을 골라 입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웃음을 짓는다.
군인선생님들은 학습봉사뿐만 아니라 나자렛집의 고장난 컴퓨터며 전등 수리 등 조그마한 일부터 시작해 한 집안 식구처럼 도와준다. 책임수녀 혼자 아이들을 도맡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어려움들이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매일 오후 7시면 전수녀는 업무 때문에 광주에 나갔다와야하는 형편이라 군인 선생님들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군인 선생님이 오시는 수요일과 금요일만 기다려진다』는 윤정(13)이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도 미리 알 수 있고, 또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줘서 너무나 고맙다』며 『나라를 지키느라 바쁘실텐데 우리들을 위해 시간 내주시는 군인 선생님들께 감사하다』고 말한다.
저녁 9시, 군인 선생님들은 부대로 복귀할 시간. 대문밖까지 배웅을 나온 아이들에게 『다음에 또 보자』며 흔들어대는 손짓에는 아이들을 향한 선생님들의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 여영철(라파엘) 상사
“상처입은 천사들 보듬겠습니다”
『전역 할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할 겁니다』
육군 기계화학교 여영철 상사(라파엘.36.광주 쌍암동본당)는 『학습봉사를 하며 친밀해진 나자렛집 아이들과의 인연을 계속 맺고 싶다』고 밝혔다.
고 1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장학금을 받기 위해 부사관에 자원한 여상사는 96년 장성으로 부대가 이전한 이후 나자렛집 아이들을 위해 후원회를 조직하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고있다.
여상사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나 가정의 문제 때문에 이곳에 왔지만 아이들 본성은 착하고 밝다는 걸 느꼈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학습봉사를 할 봉사자를 모집할 땐 고된 부대생활을 마치고 쉬어야 할 저녁시간이라 몇 명이나 올까 걱정이 많았다』는 여상사는 『많은 장병들이 자원해줘 큰 힘이 됐다』며 함께 해준 부대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여상사가 소속된 육군기계화 학교 장병들은 나자렛집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을 위한 노력봉사도 아끼지 않고 있다. 홀로사는 노인들을 위해 말 벗이 돼주고, 보일러 등 시설물을 고쳐주며 몸으로 봉사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2중대 간부들은 8년째 월급의 1%를 기금으로 조성해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해 후원해오고 있다.
지난해 성탄절 때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 즐겁다」는 아이들의 편지를 받고 큰 보람을 느꼈다는 여상사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도록 공부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도 치유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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