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의 예수회 교육은 나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훈련이었으며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의 의미를 배운 새로남의 장이었다. 서강대학교와 예수회에 진 빚은 이후 10년 가까이 학교 재단이사로 봉사를 했어도 다 갚을 수 없는 빚이다.
대학 입학 후 본격적인 본당 활동을 통해 교회에 새롭게 눈을 뜨기 시작했다. 교회로부터 받기만 하던 삶에서 조금씩 내 것을 주위로 돌릴 줄 아는 존재로 나아가기 시작한 셈이었다.
당시 아현동본당은 한창 새 성당을 신축 중이어서 주일학교 일은 전적으로 교사들에게 맡겨지다시피 했다. 그 때만하더라도 초등부 주일학교가 없는 본당이 많을 때였는데 우리 본당에는 늘 400~500명이 넘는 학생들로 붐벼 교실마저 부족해 야외수업을 하기 일쑤였다.
어렵게 주일학교 활동을 하고 있던 1962년 김병일 신부님(현 서울 월곡동본당 주임)이 보좌로 부임해오셨다. 유독 어린이들에게 사랑이 많으셨던 신부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를 도와주셨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때도 어린이미사 때 아이들이 떠들지 못하게 하는 게 교사들의 큰 몫이었는데, 신부님은 오히려 아이들은 떠드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우리를 타이르셨다.
그러면서도 신부님은 미국에 있는 은인의 도움으로 당시로서는 꿈에도 못 꿀 시청각 자료와 궤도 등 최신식 교육자료를 들여와 청소년 교육에 활용케 하는 등 남다른 열정을 쏟으셨다. 주일학교를 마치면 신부님은 교사들을 이끌고 자장면집으로 데리고 가 격려해주시곤 하셨다. 우리들의 열정에 이런 사랑이 합쳐졌기 때문일까, 교사들은 마치 신들린 듯이 일했다.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행복한 생각이 든다.
이런 가운데 접하게 된 또 하나의 활동도 내게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본당에는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 20여명이 주축이 된 「애덕회」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이 단체의 활동을 지켜봐 온 나는 대학생이 되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애덕회는 우리들 사이에서 「까리따스」라고도 불렸는데, 회원들의 돈독한 신심을 교회 바깥으로까지 돌려 사랑을 나누는 활동을 주로 했다. 주일 오후면 성당에서 걸어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남가좌동지역을 찾는 게 우리의 주된 일이었다. 당시 그 지역은 가난한 이들이 몰려 살아 움집이나 토굴, 판자집들이 대부분인데다 학교에 못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는 동네 마당이나 언덕 위 등 아이들이 모일 만한 곳이면 어디서든 자리를 펴놓고 공부와 교리를 가르쳤다. 우리들이 갈 때마다 보통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였는데, 그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던 기대는 오랫동안 내 가슴을 뛰게 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비나 햇볕이라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데 마음이 모여 스무 평 남짓한 건물을 짓기로 하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5, 6개월에 걸쳐 손수 진흙과 볏짚을 이겨 벽돌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며 건물을 쌓아 올렸다. 그런데 완공을 얼마 앞둔 어느 날 폭우가 내려 건물이 씻겨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그 때 우리의 실망도 실망이려니와 마을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여하간 애덕회의 활동은 훗날 내가 한국 까리따스에서 일하게 한 보이지 않는 밑거름이 되었다.
대학교 4학년이던 1963년 4월 교황 요한 23세가 회칙 「지상의 평화」를 발표했다. 하루는 가톨릭대학생연합회로부터 연수회 때 「지상의 평화」를 요약해 발표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예수회 신부님을 통해 영어본 회칙을 구해 공부한 후 발표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내가 최초로 접한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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