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현상
21세기 두 번째 메가트렌드는 정보화(情報化)이다. 20세기말부터 몰아친 정보혁명의 물결은 21세기 사회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 방송매체가 보편화되고 컴퓨터, 인터넷이 등장해 정보 처리 및 유통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가능하게 된 정보화 과정은 모든 분야에서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변화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첫째, 커뮤니케이션의 혁신이다. 케빈 켈리(Kevin Kelly)는 인터넷 혁명이 가져온 변화의 핵심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혁명」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혁명은 종래의 계단적 커뮤니케이션(사다리 구조의 상하명령과 보고 체계)을 점점 네트워크, 곧 그물망 커뮤니케이션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물망」 커뮤니케이션은 상하 명령-보고 체계와 전혀 다르게 위아래가 없다. 매듭(그물코)을 중심으로 사방 주변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는 각자 동등한 조건에서 하나의 매듭에 위치하여 사방의 사람들과 통신한다. 각자의 위치가 바로 중심이다. 따라서 그물망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내가 중심이고 나 외에 모든 사람은 그물망의 다른 매듭에 위치하고 있는 주변 인물에 불과하다.
둘째, 전자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요즘 여론 동향에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네티즌들이다. 인터넷은 시민들이 정치적 의사 결정에 자발적, 직접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시민 권력을 강화하고 기존의 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이미 경험했던 바 인터넷을 통한 시민단체들의 홍보 및 결속 효과는 사람들이 더 이상 정보흐름에 있어 수동적인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의사를 직접 정부와 정당에 전달하는 능동적인 행위자로 변화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잘 드러내 준다. 바야흐로 우리 사회는 모든 시민들이 생활정치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사이버 공간의 난무이다. 컴퓨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사이버공간이 난무한다. 사이버공간은 물리적 현실 세계와는 대조적으로 디지털 정보와 가상현실에 의해 생성되는 공간이다. 긍정적으로 볼 때, 사이버공간은 현대 기계 문명 속에서 질식하고 있는 인간에게 쉴 수 있는 가상적 「틈(space)」 곧 안락한 공간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은 심각한 문제점을 동반한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건전한 정신과 광기, 비도덕성과 도덕성, 불합리와 합리성 등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 학생들이 컴퓨터 폭력게임을 즐기다가 가상현실과 현실을 착각하여 장난삼아 살인하는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그 단편에 불과하다.
요청되는 가톨리시즘
정보화의 물결은 새로운 형태의 가톨리시즘을 요청한다.
첫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망을 활용한 사목을 요청한다. 교회는 정보기술을 적극 활용,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교회 정보를 쉽고 빠르게 접속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그들의 의견을 효율적으로 수렴할 줄 알아야 한다. 발 빠른 개신교 목회자들은 이미 디지털 문화의 출현을 복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인쇄된 성서가 그리스도교의 보이지 않는 「견인차」였던 것처럼, 이제 종이 대신 디지털이 정보화 사회 그리스도교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을 선교의 탁월한 도구라고 간주하고 새로운 선교의 패러다임을 개발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라고 인터넷 세상의 왕따, 곧 「따티즌(TTatizen)」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서울 서초동본당에서 쌍방향 정보 교류가 가능하고 인트라넷 기능을 갖춘 최첨단 홈페이지 구축에 나섰다는 소식이 단지 부자 본당의 사치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이는 미래의 본당사목이 가야 할 필연적인 길이다. N세대가 기성세대권을 넘어 구세대권으로 진입할 즈음에는 이 예단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둘째, 신자들의 직접 참여 욕구를 반영하는 사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직접적인 정치 참여에서 재미를 본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도 사안별로 여론을 조성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조심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나아가 어떤 형태로든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얽힌 본당운영에 대해서 적극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점점 늘게 될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일찌감치 이런 의식구조의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방식을 바꿔야 한다.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떠밀려서 응하게 되면 그 때는 그나마 남아있던 신자들도 이미 교회를 떠난 후 그러니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지도 모른다.
셋째, 사이버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사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사이버공간이 은총이 아닌 저주로 바뀌는 일을 막아야 한다.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을 이용하여 사이버 바벨탑을 짓고 있다. 거기에는 게임, 폭력, 포르노 등이 난무한다. 벌써부터 한국의 사이버 공간은 선전물 쓰레기로 가득 차고 인간의 이글거리는 욕망들에 의해 썩어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가톨릭교회는 이 세상의 구원과 함께 또 하나의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것은 사이버 공간을 성화하는 사명이다.
잘만 활용하면 사이버 공간은 신앙상담(personal care)을 위해 엄청나게 효과적인 자리가 될 수도 있다. 개신교에서는 이미 다채로운 가상공간에 전연령층, 전수요층을 겨냥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배치해 놓고 저인망으로 훑으면서 기웃거리는 관심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심지어는 가상현실과 사이버 공간을 사용하여 예배를 드리는 본격적인 사이버 교회가 곧 출현할 것이라고 한다. 실례를 들기에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 엄청난 재원과 인력이 소요된다고 하지만 이 사실이 감히 엄두를 낼 수 없게 만드는 피치 못할 이유는 결코 되지 못한다.
사이버 공간의 「열림」은 가톨릭교회를 위해 커다란 도전이며 기회이다.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피해갈 수 없는 승부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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