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난 괜찮아. 내 걱정 말고 동생들 잘 데리고 있어. 내가 곧 갈게』
가톨릭대 성가병원 혈액투석실. 손가락 굵기 만한 주사바늘을 팔목에 꼽고 필리핀의 가족에게 전화를 거는 로미(Romeo.46)씨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동생들 소식은 굵은 주사바늘이 피부를 찌르는 아픔보다 더 큰 고통으로 로미씨의 가슴을 후빈다.
한달 월급 80만원 중 60만원을 보내고, 단칸방에서 먹을 것 제대로 먹지 못하며 새우잠을 자도, 지난 6년간 로미씨는 행복했다. 자신이 번 돈으로 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동생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해 3월 갑작스레 팔.다리가 붓고 급기야 응급실로 실려오면서 로미씨와 가족들의 행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병명은 만성신부전증. 몸 속 노폐물을 걸러주는 신장에 이상이 생겨 다른 사람의 신장을 이식하지 않고는 평생 혈액투석을 통해 생명을 이어나가야 하는 병이다. 온 몸의 피를 기계의 힘으로 뽑아내 노폐물을 걸러내고 다시 수혈하는 방법이다.
매주 세 번 병원에 와 4시간 동안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로미씨는 지난 일 년간 일을 하지 못했다. 공사판에서 일용직 막노동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체류 4년 이상 된 불법체류자여서 그 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병원에서 혈액투석을 받는데 드는 비용은 1회당 12만원. 일을 하지 못하니 병원비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필리핀 동료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지만 동료들도 하루 먹고살기 바쁜 처지. 도와달라는 말은 꺼낼 엄두도 못 낸다.
필리핀 공동체에서 2차 헌금을 모으고 성가병원에서도 100만원을 지원했지만 아직도 수술비와 혈액투석비 500여만원은 로미씨의 어깨를 짓누르는 너무도 버거운 짐이다.
결국 로미씨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다. 필리핀에서는 한국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혈액투석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에 남아 치료 받을 여력도 없다.
동생들 학비를 벌겠다는 일념으로 땀흘려 일한 이 땅에서 로미씨가 얻은 것은 평생 완치가 불가능한 병과 빚뿐.
그래도 로미씨는 몸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한국에 꼭 다시 오겠다고 말한다.
『다시 와야만 해요. 고향에서는 네 명이나 되는 동생들 가르칠 방법이 없어요』
※도움주실분=국민은행 601-01-0611-531 (주)가톨릭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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