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강한 변화의 바람을 반영한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를 통해 확인된 거센 변화의 바람은 부패와 구태로 얼룩진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만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16대 국회의원 273명 가운데 이번 총선에서 다시 당선된 의원이 95명에 불과한 현실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의원정수가 299명으로 늘어난 17대 국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2%에 불과할 정도로 물갈이 폭이 컸다는 것은 국회와 정치에 대한 불만이 컸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특히 지난 16대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펼쳤던 66명의 신자의원 가운데 이번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재입성한 의원이 23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17대 국회를 이끌어갈 신자의원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70명이라는 적지 않은 수의 신자들이 당선됐다. 이를 전체 의원정수에 비춰보면 23.4%가 넘는 수치다. 이는 신자 복음화율에 비하면 높은 수치로 신자의원들에 대해 거는 기대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양적인 면에서 지난 16대 국회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이들이 정치계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신자들과 일반국민들이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신자들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6대 국회에서도 국회의원 정수의 4분의 1에 달하는 적잖은 수의 신자의원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그리스도교적인 정신에 따라서 올바른 정치활동을 벌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신자의원들이 소속 정당의 정책과 정략에 충실히 따르는 역할만 했을 뿐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제 몫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면이 적지 않다.
실제 16대 국회에서 신자의원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반하는 행동을 통해 신자들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태를 적잖이 보이기도 했다.
「사형폐지 특별법안」을 둘러싼 모습이 대표적인 것이다. 신자의원 대부분을 비롯해 의원정수의 과반수가 넘는 155명의 국회의원이 직접 서명했음에도 「사형폐지 특별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보지도 못한 채 자동폐기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또 교회를 비롯해 종교계가 한 목소리로 들고 나왔던 「생명윤리법」 개정과 같은 문제는 차일피일 미루다 끝내 무산시켜버렸다.
이처럼 신자의원들은 주어진 선택의 순간마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당리당략에 휩쓸려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모습으로 실망감만을 안겨주었다.
신자의원들의 활동을 가까이서 지켜본 국회 신자 직원들의 모임인 다산회의 한 관계자는 『16대 신자의원 가운데 나라와 교회를 위해 제 목소리를 낸 의원들은 손으로 꼽을 만하다』면서 『새로이 구성될 국회에서는 신자의원들이 신앙적 양심에 따라 국정 운영에서 누룩 역할을 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교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신앙에 따라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나갈 신자의원들의 몫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런 기대를 염두에 둔 듯 이미경(마리아.53.서울 수색본당.열린우리당) 당선자는 『국민들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를 위해 신자의원들의 뜻부터 모아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국민들 속에서 살아 숨쉬는 정치를 통해 미래가 보이는 삶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나아가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 새롭게 확인된 민의를 바탕으로 희망의 정치를 열어가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이들이 신자의원들이다.
신자의원들은 무엇보다도 「정치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각인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정치공동체는 당리(黨利)를 공동선에 앞세워서는 절대로 안 된다』(사목헌장 75항)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국정에 임하는 의지를 새롭게 다져야 할 것이다.
이런 교회의 가르침을 밑바탕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한발 더 다가서는 정치인, 공동선에 따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스스로의 몫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과 정치윤리적 원칙을 지킴으로써 의정활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자연스레 전할 수 있는 신자정치인상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국회에서 끝내 무산돼 버리고만 사형폐지 법안의 입법과 생명윤리법의 조속한 개정 등이 당장 이번 국회에서 신자의원들이 지고 갈 십자가로 꼽힌다.
나아가 무너져가고 있는 가정을 되살리고 우리 사회에 생명의 문화를 뿌리내릴 수 있는 다양한 활동에도 눈을 돌림으로써 「복음화의 일꾼」으로서 적극적인 몫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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