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로 불리며 400여개의 섬들이 몰려 있는 터키 서부 지역의 에게해는 일찍이 트로이, 베르가모, 에페소 등 고대 도시들의 유적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이 지역에는 성서의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일곱 등경, 곧 일곱 개의 교회가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중 인구 300만명의 에게해 최대 도시 이즈마르에서 80㎞ 가량 떨어진 곳에 로마의 소아시아 행정수도이자 교통의 중심지였던 고대도시 에페소가 숨쉬고 있다.
이 에페소에서 예수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사도 요한이 공동체를 세우고 주교들을 임명했으며 복음서와 서간들을 저술했다. 요한 사도는 이곳을 거점으로 해서 묵시록에 기록된 일곱 개의 지도적인 교회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가 이곳에서 사망한 뒤 4세기경부터 주요 순례지 중의 하나가 됐으며 6세기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명에 의해 요한의 무덤터에 6개의 돔과 130m 길이의 십자가 모형으로 된 거대한 교회가 세워졌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폼페이의 유적과 마찬가지로 몇 개의 건물벽과 기둥, 받침대 등만이 남아있을 뿐이어서 그 흔적을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요한 사도와 성모 마리아, 그리고 사도 바오로 등 초대 교회 중요 인물들의 삶이 배어 있기에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
사도 요한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제베대오의 두 아들 가운데 동생이다. 전승에 의하면 신약성서의 제4복음서와 묵시록, 3편의 편지를 쓴 저자이다.
부친의 업을 따라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 요한에게 어느날 예수가 찾아왔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마태 4, 21~22)
예수의 제자가 된 후 요한은 친형 야고보, 베드로와 함께 예수가 가장 가까이 두는 제자가 됐다. 그리하여 요한은 예수의 공생애 내내 예수를 가장 가까이에서 섬겼으며 요한복음서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에도 감히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요한 21, 7)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에 대한 예수의 사랑은 극진했다.
예수는 요한과 야고보 두 형제를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고 불렀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들이 사랑하는 예수가 사마리아의 한 동네에서 냉대를 받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루가 9, 54)라고 분개할 만큼 격렬한 성품을 지녔기 때문인 듯하다.
그 뜨거운 사랑으로 요한은 예수의 십자가 형장까지 따라간 유일한 제자였다. 그리하여 요한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예수로부터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 27)라는 당부를 받아 성모 마리아를 위탁받고 자기 집에 모셨다.
▲ 요한은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겼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형장까지 따라간 유일한 제자였다.
요한이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묵시록은 신약성서의 마지막 책이며 유일한 묵시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묵시록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영광과 악의 세력에 대한 승리에 큰 관심을 둔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승리는 이미 역사 안에 와있지만 그 공동체의 승리는 아직 오지 않았다. 따라서 묵시록은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신학서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미 완전한 승리를 거두신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공동체 역시 결국은 승리를 얻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결국 묵시록을 통해 요한 사도는 교회를 위한 희망을 보여주며 그것은 곧 역사를 그리스도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현시로 제시하는 것이다.
요한 사도를 일러 혹자는 사랑의 사도로 부른다. 신약성서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구절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사도 요한이 집필한 것으로 전해지는 요한복음, 요한의 편지 세 권, 그리고 요한묵시록이다. 이 5편에 나오는 사랑이 모두 92번으로 신약성서에 나오는 사랑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복음서에서도 요한복음은 총 39번이나 나와 마태오 12번, 마르코 6번, 루가 13번과 비교해봐도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
자기 중심적이고 급하고 격렬한 성격에,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모친을 통해 높은 직책을 부탁할 정도로 개인적 야심에 빠져있기도 했던 요한 사도가 이처럼 사랑의 사도로 변모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은 결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