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정보화 시대의 가톨리시즘에 관해 논하면서 「사이버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관면 받을 수 없는 요청이라는 점을 보았다. 그러면서 교회는 사이버공간이 저주로 바뀌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기현상이 하나 있다. 사이버샤머니즘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까지 와 있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몰려오고 있는 디지털 점쟁이
정보화시대를 흔히 「디지털시대」라고도 부른다. 앨빈 토플러에 따르면 디지털화한 현대인들은 빠르고 단순하면서도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만을 정보, 지식으로 삼는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의 전통적인 점술(占術)문화는 사그러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점술은 이러한 논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기승을 부리고, 오히려 첨단기술과 접목하여 발전된 형태로 「진화」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 점술업은 첨단화, 과학화를 표방하면서 정보통신기술이라는 「새옷」을 입고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원시적인 악습(惡習), 미신(迷信), 금기(禁忌)로까지 여겨지던 이 점술이 인류가 발명한 「첨단기술」인 인터넷과 만나 어엿하게 고부가가치 콘텐츠로 자리잡고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이른바 로데오거리에 20~30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점카페」가 50여 곳이 넘게 들어서서 「점술 밸리」가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이러한 역술산업의 붐(Boom)은 그대로 첨단통신체계와 사이버공간을 점령하고 말았다. 그 실태를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신동아 2002년 4월호 참조).
- ARS 점집: 700, 600, 800번 등으로 시작하는 ARS전화 운세서비스는 회사당 20~30명의 전문 역술인을 모집, 일대일 상담 형식으로 운세를 봐준다. 보통 30초 단위로 1000~2000원 정도의 요금을 받고 있어 30분 정도 상담하면 요금이 10만원에 이르는데도 찾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역술인마다 전문 분야가 세분돼 있고 직접 점집을 찾아가는 번거로움도 덜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ARS 점집」은 IP업자들이 통신망 사업체(KT, 데이콤, 하나로통신, 온세통신 등)로부터 회선을 임대해 역술을 새로운 사업 콘텐츠의 하나로 상품화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 모바일 부적 판매: 모바일 부적은 휴대폰 액정화면 크기에 맞춰 실제 부적을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한 것을 말한다. 통신망 사업체들은 온라인 오프라인 역술업체와 제휴해 인터넷을 통해 모바일 부적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유료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유무선 통합서비스를 통해 건당 500~1000원대의 캐릭터 부적을 판매하고 있으며 KTF, LG텔레콤도 무선인터넷을 통해 운세서비스와 부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달마도, 고대 솔로몬 부적, 복 돼지 부적, 캐릭터 부적 등이 모바일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 사이버 철학원: 포털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숫자가 900여개가 넘는 「사이버 철학원」도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10대 포털사이트의 메인 화면에서 운세코너는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 잡고 있을 정도이다. 일례로 한 점술 포털의 선두주자는 가입자 수가 수백만 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인터넷 철학원」이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익명성의 보장, 신속성, 저렴한 가격에 있다고 한다.
이처럼 점술업이 기업화 대형화하면서 점점 특화(特化)돼 정치 분야에 능통한 점술가가 있는가 하면 재산관리나 주식투자 같은 경제 문제, 스포츠계의 전략구축, 건강문제, 이혼문제 전문가도 등장하고 있다.
역술사업의 호황은 연간 1조원이 넘는 수입 규모, 45만 명으로 추산되는 역술인과 무속인의 숫자로 대변되기도 한다. 특기할 점은 주요 역술인 연령대도 주요 이용자 분포도 20, 30, 40 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요청되는 가톨리시즘
가톨릭교회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수수방관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해야 할 것인가? 긴급한 두 가지만 언급해 본다.
첫째, 신자들을 철저히 복음적으로 재무장시키는 것이다. 모 교구에 교육을 갔다가, 어느 가톨릭 신자가 본당신부로부터 『과학적으로 운세를 푸는 것은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컴퓨터)점집을 차렸다는 말을 들었다. 이 무슨 엉터리 같은 일이며 경을 칠 일인가? 신자들에게 복음적 가치관을 올바로 형성시켜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다. 강론을 통해, 교육을 통해, 서적을 통해 기회 있을 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점치는 일은 제1계명, 곧 가장 큰 계명을 거스르는 행위로서 그야말로 「신앙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주지시켜 주어야 한다. 『점쟁이, 복술가, 술객, 마술사, 주문을 외는 자, 도깨비 또는 귀신을 불러 물어보는 자, 혼백에게 물어 보는 자가 있어서도 안 된다. 이런 짓을 하는 자는 모두 야훼께서 미워하신다』(신명 18,11), 『마술쟁이와 우상 숭배자와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곳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바다뿐이다. 이것이 둘째 죽음이다』(묵시 21, 8).
둘째, 맞불을 놓아야 한다. 금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점치는 것과 미신행위의 근본적인 원인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에 대한 복음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두려워 마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시편 55, 22).
그리고 이런 대안을 저들이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첨단매체를 똑같이 이용하여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게 해야 한다.
당위(當爲)만 늘어놓는 것이 답답한 일인줄은 안다. 허나 이런 의식이라도 없으면 누가 대안적인 실행(實行)을 도모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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