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5일 근무제
현상: 주5일 근무제의 확산은 점점 여가, 취미, 종교 생활의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현상들이 감지되고 있다.
- 그동안 「시간 없다」는 이유로 미뤄 두었던 여가와 취미생활에 다시 손을 대거나 자아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각에서 일고 있다.
- 기대했던 가족중심의 여가생활 보다는 사교나 친목 목적의 주말 프로그램이 더 성행하여 오히려 가족간의 유대가 이완되고 일탈 또는 탈선이 조장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 아무래도 「주일의식」의 약화를 가져와 신앙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주일미사 참례자수의 급감현상에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주5일 근무제의 확산이라고 보인다.
요청되는 가톨리시즘: 이런 현상들에 직면한 가톨릭교회는 현재의 신자들을 어떻게 교회 안에 머물게 할 것이며, 현재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더 풍요롭게 해줄 것이며, 여가 선용 문화를 어떻게 선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위기를 넘어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다음과 같은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신앙의 기초를 재복음화 하는 것이다. 신앙의 기초가 부실하니까 미풍(微風)만 불어와도 신자들은 휘청거린다.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해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를 『주일 지키는 것은 의무이다, 십계명도 의무이다, 이것도 저것도 의무이다』하는 식으로 강요만 해가지고는 결코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의무(義務)가 아닌 복음(福音) 곧 기쁜 소식으로 선포해야 한다. 『왜 주일이 중요한지, 도대체 안식일은 우리에게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지』하는 식으로 엔돌핀, 신바람이 솟는 복음적인 동기를 제공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역동적인 전례, 성의와 열정이 있는 강론을 통해서 확실하게 영적인 충전(充塡)을 이뤄줌으로써 신자들 마음에 주일 미사에 참례하고 싶은 자발적 욕구가 생겨나도록 하는 것도 당연히 요청된다. 여기서 성서신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주일(안식일)의 중요성을 상대화 하는 그 어떤 인간적인 처방도 정당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짚어두고 넘어간다.
둘째, 가정 사목 프로그램을 보강하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하는 미사를 장려하고 가족 모두가 성당에서 주일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체제로 공간과 프로그램을 보완-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본당의 분위기를 보다 아늑하고 자연친화적으로 만들고 신자들 간의 친교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서 주일 성당에 가는 것이 정서적으로 또는 여가 선용 차원에서도 매우 유익하다는 느낌이 들게 해줄 필요가 있다.
그 연장선에서 거론되는 것이 휴양지 사목이다. 여러 지방교구에서 준비하고 있거니와 여가를 선택한 신자들의 처지를 인정하고 여행과 휴가 중에도 신앙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비책 마련이 주효할 것이다.
(2) 유목민화
현상: 2004년 4월초 개통된 고속전철(KTX)은 그렇지 않아도 급속히 진행되던 「유목민화」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오늘날 한국인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신유목민의 도시풍을 만들고 있다. 잦은 이사와 원거리 출퇴근 및 통학 등은 정착문화가 허물어지고 유랑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현상을 반영해 주는 몇 가지 예들에 불과하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전국이 하루 생활권으로 바뀌어 가면서 현대인의 생활양식은 그야말로 유목민의 그것과 흡사해지고 있다. 머지않아 「가방」 하나에 중요한 모든 소유물을 챙겨들고 이리 저리 다니는 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른다.
요청되는 가톨리시즘: 생활양식의 「유목민화」는 기존의 본당 중심 사목을 보완하는 직능, 직장 중심의 공동체 사목의 필요성을 시사해 준다. 이는 또한 거리와 상관없이 유대를 이뤄주는 인터넷 통신망을 매개로한 사이버 공동체의 필요성에 다시금 눈을 뜨게 해준다. 즉,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관심사별, 기능별 동아리 모임 형식의 신종 공동체 모델 개발을 압박하고 있다. 기존의 속지주의(屬地主義) 중심의 사목에 다양한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명령이다.
▲ 4월초 개통된 고속전철(KTX)은 그러지 않아도 급속히 진행되던 「유목민화」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3) 양성화(兩性化)
현상: 시대는 점점 남자와 여자를 생물학적인 성별(性別)에 고착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쪽으로 흘러,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라는 슬로건이 폐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점차 자신의 성별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특성과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사람들의 시대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점점 「차도 끓일 줄 아는 남자」, 「못질도 할 줄 아는 여자」를 선호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른바 양성화 시대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양성적 사회의 빛깔은 흑백이 아니라 무지개색이다.
요청되는 가톨리시즘: 양성화는 도전이라기보다는 기회이다. 가톨릭교회는 그 이점을 충분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전통적 성역할 관념을 지양(止揚)하고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많이 좋아지긴 했어도 교회 사도직 단체들에서 여성이 대표로 선출되거나 발탁되는 일은 여전히 드물다.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교회 내에서 6대 4로 숫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의 역할은 「보조」, 「뒷바라지」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교회는 이제 저 고정관념을 깨고 오직 신앙심, 능력, 자질, 의욕 등을 기준으로 하여 남녀차별 없이 과감하게 기용할 줄 알아야 한다. 교회 안에는 선교, 방문, 교육, 사회복지 등의 분야에서 여성들이 더 많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역할과 직책이 많다. 타고난 성별의 특성을 존중하되, 그와 함께 잠재된 「남성 안의 여성성」과 「여성 안의 남성성」을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발휘토록 하는 문화형성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교회를 향한 시대의 명령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