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열정의 수녀회 창립자 안니발레 신부가 수도회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날 우연히 닥친 은총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하느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김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신학교 과정중 부제 시절 눈먼 거지 「장코네」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이 만남은 안니발레 신부 자신의 특별한 소명을 명확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서품 즉시 모든 사목활동을 포기하고 「장코네」가 살고 있던 「아비뇨네」 빈민가로 들어간 안니발레 신부는 하느님을 모르는 불쌍한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으며, 온갖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소녀들을 위해 고아원 설립 작업을 하면서 이를 도울 수 있는 수도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안니발레 신부는 이 과정에서 목자 없는 양을 일컬은 복음 말씀을 발견하고 신앙적인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 목자없는 양같이 버림받은 채 무기력해져 있고 방황하는 수백만명의 군중들 앞에 과연 이 극소수의 구원받은 고아들과 가난한 이들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보잘 것 없는 내 힘의 한계, 내 능력의 초라함을 생각하곤 했다. 끊임없이 하나의 해결점을 모색하던 중에,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말씀을 발견하게 되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그때 나는 모든 선한 일들, 영혼을 구원하는 일들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때 부터 그의 끊임없는 선교 활동 즉, 주 하느님께서 많은 성직자들을 이 세상에 보내 주시도록 교회와 하느님의 백성이 다 함께 기도와 일상의 희생을 바치게끔 하는 부단한 노력이 시작된다. 결국 그의 염원은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1887)와 「로가찌오니스티 수도회」(1897) 창설로 이어진다.
안니발레 신부는 또한 1900년 성소를 위한 기도에 동참할 사람들을 모아 「성소후원 청원회」를 조직, 젊은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 활동은 교황 레오 13세를 비롯한 역대 교황으로부터 격려를 받았으며, 한 주교는 『안니발레 신부는 우리 모두가 기도하도록 무릎을 꿇게 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수도회는 그후 세계 16개국으로 뻗어나가 지역 교회와 상황이 필요로 하는 것에 응답하는 참된 일꾼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 곳곳 각 분원에서의 사도직은 학교, 유치원, 농아자들을 위한 학교와 기숙사, 고아원, 미혼모의 집, 대학생 기숙사, 피정센터 운영 등이며 교리교육, 의료활동, 무료급식 활동도 벌이고 있다.
한국 진출은 수도회 창설 100주년을 맞는 1986년 이뤄졌다. 이후 한국 분원은 유치원 운영과 구립 어린이집 위탁 교육, 결손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가족 공동체 그리고 주말 개인피정과 젊은이들을 위한 기도 모임의 사도직, 그리고 교리교육 등 봉사를 계속하며 소명에 임하고 있다. 남자 수도회 로가찌오니스티 수도회는 2003년 1월에 한국에 진출, 한국 이탈리아 필리핀 출신 신부 세명이 서울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한편 안니발레 신부는 오는 5월 16일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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