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눈을 너무 의식하게 되면 인간은 집단심리에 빠지기 쉬운 특성이 있다 합니다. 그런데 집단을 연구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집단에게 과제가 있을 때 집단은 잘 기능하지만 집단 과제가 주어지지 않으면 혼란에 빠지고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크게 세 방향으로 정리된다고 합니다. 즉, 한명의 리더를 만들어 모두가 그에게 의존하는 의존그룹이 생겨나거나 아니면 그룹 안이나 밖에 가상의 적을 만들어 싸우려하거나 아니면 도망치려고 하는 투쟁 도피 그룹,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룹 안에 좋은 커플을 만듦으로 집단의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커플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합니다. 정치지도자나 스타들을 맹목적으로 받드는 모습, 그리고 왕따 현상, 그리고 가상의 적을 만들어 이용하는 국내외 정치 현실, 스타 커플 탄생이 뉴스의 톱을 차지하는 현상들이 모두 이러한 집단심리의 반영인데 어쩌면 이러한 모습이 이 시대가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집단 심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할까요?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가치관」에서 해답을 찾습니다. 「자신의 가치관」, 그리고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같이 고려할 수 있는 있는 균형 잡힌 눈」이 현대의 병리적인 집단심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요, 어쩌면 신앙인의 지상과제인 사랑의 실천에서도 똑 같이 요구되는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은 고별사의 일부로써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는 내용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여기서 예수님의 계명을 새롭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점은 이 계명 안에 포함된 「서로」라는 말마디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말 때문입니다. 먼저 서로라는 말. 우리는 요한계 문헌 안에 나타나는 말 중 가장 감동적인 말이 사랑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동적인 사랑이라는 말이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공동체내의 사랑을 우선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약간 실망합니다. 필자도 처음 신학교에서 요한 서간과 복음서에 나오는 사랑이라는 말이 조금은 배타적이고 편애적인 사랑이요, 그리스도교 공동체내의 사랑을 강조한다는 것을 배우고 나서 약간 실망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한,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이론적으로 그리는 사랑과 실천의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은 구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점입니다. 물론 모든 이를 사랑하는 것은 멋진 말임에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말 한계를 가진 인간이 실제 현장에서 그 같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란 물음 앞에서는 조금 고개가 저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랑이란 어느 정도 배타적이고 편애적인 요소가 있겠구나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좀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부부관계를 예로 들면 아내와 다른 여자를 똑같은 크기로 사랑한다면 이론의 여지는 있겠지만 평범한 인간 가정은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10만큼 사랑한다면 다른 여인을 5만큼, 내 공동체의 사람을 10만큼 사랑한다면 타 공동체의 사람을 8이나 5만큼 「덜 사랑」할 때 인간 공동체는 유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한 사랑은 하느님나라가 오면 극복되어야 할 사랑이겠지만 어떻든 현실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야훼 하느님이 나는 질투의 신으로서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한다란 계명을 십계명의 일 계명으로 계시함도 인간이 가지는 이러한 특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기에 이 서로라는 말은 다른 이를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랑의 우선순위와 크기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말. 이 말은 가까이는 발씻김예식을 뜻합니다. 발을 씻는 것. 종이나 하는 일입니다. 봉사요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란 말은 예수님의 죽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죽음, 우리의 죄를 감싸 안은 사랑인데 아마 이 점이 예수님 사랑이 가지는 위대함입니다. 우리의 죄라는 인간의 가장 부족한 부분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의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예수님의 사랑은 무엇을 먼저 요구한 사랑이 아니라 먼저 당신이 우리에게 다가온 「먼저 실천한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실천하기 위해 요청되는 덕목은 무엇일까요.
「자신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힘」, 「욕심과 본능을 넘어서는 올바른 가치관의 확립」, 이 두 가지의 덕목이 「기도」와 어우러질 때 예수님 사랑의 계명을 우리는 우리 삶의 자리에서 조금은 흉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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