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웰빙문화
현상: 「웰빙(well-being)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이는 의식주 문제를 넘어서 질병 없이 건강한 인생을 살자는 것을 의미한다. 웰빙 문화는 유기농 채식, 여행과 레저, 패션과 인테리어, 뷰티 등에도 붐을 이루며 나아가 유통, 가전, 건축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마케팅의 중심이 되고 있다.
왜 갑자기 이런 열풍이 불어 닥치고 있을까?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이는 후기근대(postmodern) 사회의 한 현상이라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이 기성 전통과 권위에 속하던 종교 및 정치제도의 해체를 가져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로 인해 개인을 초월한 의미 구조들로부터 명확한 세계관이나 자아 정체성을 더 이상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자신의 「몸」이 신뢰할 만한 자아감을 재구성할 수 있는 탄탄한 토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셀 푸코의 말을 빌자면 이는 「거시권력」 곧 자신의 존재 밖의 힘에 의존하던 종래의 삶에서 「미시권력」 곧 자신의 존재에 내재된 힘에 의존하는 삶에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영혼」이 아니고 「몸」을 중히 여기게 되었을까? 모더니즘이 이성(理性)을 중히 여겼음에 비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에 반기를 들고 감성(感性)을 더 중히 여기는 경향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감성은 바로 「몸」의 발로(發露)인 것이다.
이처럼 그 나름의 사정과 논리와 명분에서 생겨난 것이 웰빙 문화이지만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웰빙 문화는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호텔에서 내놓은 유기농 식사, 피트니스, 마사지 등이 포함된 「웰빙 패키지」는 코스에 따라 20~80만원을 호가한다. 서민의 한 달 치 생계비를 하루저녁의 「웰빙」이 잡아먹는 것이다. 이렇게 웰빙 문화는 웰빙 비즈니스와 맞물려 왜곡된 귀족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웰빙은 더 이상 자신에게 충실한 긍정적 가치가 아니라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욕망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웰빙이 추구하는 「몸 가꾸기」는 우리의 시선을 이 세상에 붙들어 매어 그 너머의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물론 웰빙에서도 「마음의 평화」 및 「영성」에 대하여 말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연주의적인 또는 내재적인 영성으로만 치달아 초월적 영성에 이르지 못한다. 곧 존재의 궁극적인 근거인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만다.
요청되는 가톨리시즘: 웰빙문화를 주도하는 세대는 20~30대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교세통계에서 이 연령대는 마이너스(-)성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점 많은 젊은층이 교회를 이탈해 웰빙 열풍에 동참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교회는 가치-영성적으로 및 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 뻔하다. 우선적으로 급한 세 가지만 언급한다.
첫째, 가톨릭적 웰빙 문화를 창도하는 것이다. 웰빙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톨릭적 대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웰빙 문화가 상업주의에 끌려 다니지 않도록 서민형, 공동체형 웰빙 문화를 개발하는 것도 그 한 방법일 수 있다. 이미 하고 있던 자연친화적 먹거리 운동, 환경운동 등을 통하여 돈 많은 사람만 누리는 「개인주의적 먹거리 문화」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생태주의적 먹거리 문화」를 선도하는 것도 그 한 방안이다.
둘째, 성서적 인간관에 입각한 영육합일체(靈肉合一體)의 영성을 견지하는 것이다. 몸으로만 사는 것은 「반」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삶을 사는 셈이다. 왜냐하면 몸은 질료이고 영혼은 형상이기에 이 양자의 통일체만을 비로소 인간 행위의 원천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없는 「몸으로만의 영성」은 죽은 영성이다. 바오로는 하느님나라가 몸으로만의 「먹고 마시는 일」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로마서 14,7). 영으로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 인간, 곧 성령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은 존재의 근거와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일상성 혁명을 주도하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 소비문화의 한 복판에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일상성 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내다본다. 일상성 혁명이란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소비생활에서 불현듯 의미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강제에 의한 소비를 떠나 일상의 평범한 요소들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 혁명적인 관점의 전환을 말한다. 실제로 현대 사회의 일상은 상업적 소비주의에 물들어 있다. 우리 일상 삶의 세계는 광고, 미디어, 언론에 포위되고, 범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생활 양식(코카콜라, 맥도널드 등)을 강요받는다. 결과적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소비적 일상에 대한 공허감, 소외감,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래서 과연 우리는 과거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런 맥락에서 소비사회에 환멸과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는 선각자들을 주축으로 해서 「일상성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지식과 정보, 자본과 권력을 통제하는 상업주의 프로그램에 의해 조작되는 소비적 일상을 거부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의미 충만한 일상을 만들어 감으로써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일상성 혁명이 일어날 것이며 이미 일어나고 있다.
무차별한 웰빙 문화가 넘실대는 현실 속에서 교회는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만족한 돼지가 되기보다는 적게 소유하고 덜 소비하지만 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인간이 되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일상성 혁명은 소비문명으로부터 강요된 질서에 순응하는 수동적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나가는 창조적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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