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문학의 각 권을 살펴보게 되면서 새삼스레 느끼고 있는 사실은,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진리를 끌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할 진정한 지혜요, 숭고한 사명이라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망상과 착각을 초래시키는 위험한 겉껍데기일 뿐이지만 사실 우리의 모든 지성과 감성을 결정하는데 절대적인 잣대로 작용하는 것은 바로 그 가시적 면모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가식에 언제나 순순히 넘어가고 심지어는 그 혼란에 매혹되기까지 한다는 사실, 그런게 두렵고 치명적인 한계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삶에는 「각성」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일까.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잠언 27, 1)라는 잠언을 설명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삶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인식」이라고 쓴지 꼭 하루 뒤에 필자가 속한 수도회의 창립자 신부님의 별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랬다. 그런게 삶의 실상일 수도 있었다. 보이는 것만 가지고는 한치도 예측할 수 없고, 따라서 준비할 수도 없는….
잠언에 대한 고찰을 마치고 이제 함께 살펴보아야 할 책은 「전도서」이다. 전개되는 사상, 문체, 시대적 배경 등이 잠언과는 매우 다른 설정으로 되어있지만, 생의 진실과 맨 얼굴은 보이지 않는 삶의 뒷모습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다는 관점에서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 『헛되고 헛되다』라는 탄식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 이 책은 왠지 허무주의적인 분위기와 퇴폐적 절망으로 일관된 듯하지만, 결국 보이는 것에만 연연한 삶이 얼마나 헛된 지를 경각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철저히 다른 지혜문학 작품들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하겠다.
명칭
「전도서」는 히브리말로 「코헬렛」이라 불리는데, 이는 히브리 동사 「카알」(부른다, 불러모으다, 회합하다)에서 파생된 여성형 분사이다. 따라서 이 말은 모인 무리에서 말하거나 가르치는 사람 즉 「설교자」를 의미한다. 이렇게, 「코헬렛」은 처음에는 일반명사에서 기인한 말이지만, 점차적으로 이 명칭을 가진 이의 가명 혹은 제자들이 그를 부르던 호칭으로 자리잡음으로써, 한 사람의 이름처럼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성서를 한국말로는 「전도서」라고 부르고 있는데, 책 전체의 내용에 「전도」 혹은 「선교」와 관련된 행위나 언급이 등장하지 않기에, 「전도서」보다는 「코헬렛」이라는 제목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 제기되고 있다.
저자
1, 1의 표제에 의하면, 이 책은 『예루살렘의 왕 다윗의 아들 코헬렛의 말씀』이라고 되어있다. 저자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명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다윗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책의 저자는 자신을 「솔로몬」으로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솔로몬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 2)책 배경이 솔로몬 시대로 보기 어렵다는 점, 3)사용된 히브리어가 매우 후대의 색채를 띄고 있다는 점(형태론과 구문론에서 아람어적 표현을 발견하게 되고 때로는 헬레니즘적 영향도 발견됨) 등을 근거로 하여, 학계는 이 책의 실제적 저자를 솔로몬으로 보지 않고 있다. 실제 저자는 「지혜의 대명사=솔로몬」이라는 통념을 그대로 적용하여 그의 책을 솔로몬의 권위와 명성아래 두고자 하였을 뿐, 그가 솔로몬 자신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코헬렛」이라고 제시되고 있는 이 존재가 구체적으로 누구였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왕이라는 신분으로 소개되어있는 것도 1~2장에만 국한된 현상이고, 3장부터는 왕실과 전혀 관계없는 내용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통해 저자에 대해 추정해 볼 수 있는 몇가지 점은, 그가 직업적 현인(지혜자)으로서 백성에게 지혜를 가르치려고 노력하였다는 점, 전해 내려오는 잠언들을 수집, 정리, 기록하고 때로는 새로운 잠언을 지어내기도 하였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헛되고 헛되지』 않게 살려면
늘 안정적이고 준비된 대로 실행되는 삶이라면, 그건 전도서가 언급하는 『헛되고 헛된 삶』일지도 모른다. 순간 순간 닥쳐오는 낯선 사건과 얼굴들이 때론 버겁고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런 긴장과 낯설음을 통해 비로소 나는, 보이지 않아 쉽사리 만날 수 없던 진정한 내 운명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만이 그동안의 오랜 고통과 상실을 보상받는 길은 아닐는지, 그런 생각을 이제는 간혹 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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