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동안의 사목회의 성과의 실천 과정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각 교구 사목교서와 교구 시노드 문헌은 주요한 검토 대상이 될 것이다.
특별히 1982년 부산교구 공의회로부터 2003년 폐막한 서울대교구 교구 시노드까지 5개 교구에서 실시한 교구 시노드들은 선교 300년대, 그리고 새 천년기를 맞이하고 지내는 한국교회가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고 새로운 사목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혼신의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천주교 선교 200주년 사목회의가 새로운 시대를 맞아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의 새로운 사목 방향을 모색하고 참된 한국 교회가 되기 위한 전국적인 차원의 노력이었다면, 이들 교구 사목회의는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발전한 한국 교회가 미래 사목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각 교구 차원에서의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200주년 사목회의를 통해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된 하느님 백성들이 한데 모여 교회와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논의하고 의견을 나누는 체험을 한 바 있는 각 교구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사목 현실과 지역 환경에 맞춰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목적 현안들을 교구 시노드를 통해서 논의하고 앞으로의 사목방향을 함께 찾아나가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런 만큼 교구 시노드들을 통해서 집약된 사목적 과제들과 전망들은 이들 교구 시노드를 실시한 교구들이 자신의 모습을 쇄신하고 복음화를 위한 다양한 사목 정책 수립으로 이어졌고, 크든 적든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둬가고 있으며, 그러한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은 이들 교구 시노드들이 한국 교회 최초로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가 함께 모여 교회 쇄신과 민족 복음화의 과제를 한국 교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논의했던 200주년 사목회의의 문제 의식과 정신, 현실에 대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느 정도나 수용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200주년 사목회의의 성과를 한국교회가 소홀하게 취급한 것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그와 같은 맥락에서 각 교구의 교구 시노드에서도 사목회의 의안 내용이 적극적으로 충실하게 반영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부산교구
200주년 사목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이미 부산교구에서는 교구 설정 25주년이 되는 1982년 「교구 공의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1979년 9월 1일부터 그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신앙 쇄신과 토착화 및 사회 안에서의 교회」를 대주제로 한 부산교구 공의회는 1982년 4월 5일부터 1984년 10월 3일까지 네 차례의 공의회 총회와 65회에 달하는 분과 회의를 개최했다. 부산교구 공의회는 이러한 일련의 회의들을 통해 공동체, 사회, 전례, 교육 등 각 분과별로 교구의 미래 사목 방향을 논의했다. 이처럼 부산교구 공의회는 200주년 사목회의에 앞서, 혹은 같은 시기에 준비되고 열렸다.
대구대교구
교구 시노드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말, 2천년 대희년을 앞두고서부터이다. 1984년 12월 1일 200주년 사목회의가 폐막된 후 처음으로, 13년이 지난 1997년 11월 30일 대구대교구가 교구 시노드를 개막했다.
대구대교구가 교구 시노드를 준비하게 된 계기는 바로 한국 천주교 선교 200주년이었다.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는 전국 차원의 시노드라 할 수 있는 200주년 사목회의를 준비하면서 교구 시노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분야별로 교구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찾기 시작하면서 교구 단독 시노드를 개최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대구대교구가 시노드를 준비한 것은 1991년. 하지만 실제로 교구 시노드 개최가 결정된 것은 200주년 사목회의 직후인 1985년 11월 3일, 대구대교구 사목회의 준비위원회 제3차 정기총회에서 「평신도 의안」을 확정 발표하면서 이뤄졌다.
시노드 개최를 결정한 뒤 신자 의식 조사와 지구 및 본당별 논의를 거쳐 1995년 10월 의제를 선정, 분과별 활동에 들어갔고 첫 총회가 1998년 6월 6일 개최됐으며 총 3차례의 총회를 가진 뒤, 1999년 10월 10일 폐막식 및 폐막미사를 끝으로 2년여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대구대교구 시노드는 총회와 분과별, 지구별 회의 등을 거치면서 35개 제안을 표결하고 4가지 결의문을 채택했다. 성직자, 수도자, 청소년 신앙교육(주일학교), 예비신자, 본당상, 사회복지, 가정 등 7개 분과에서 논의되고 결의된 결과를 바탕으로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는 26쪽 분량의 교구장 교서를 발표했다.
인천교구
대구대교구에 이어 인천교구와 수원교구가 거의 같은 시기에 교구 시노드를 시작했다.
인천교구는 「그리스도와 함께 희망과 쇄신을 향해 나아갑시다」를 주제로 1999년 6월 6일 개막미사와 제1차 총회를 개최했다. 이후 2000년 9월 3일 폐막총회까지 1년 3개월간 인천교구는 시노드를 통해 교구의 목표와 현실을 점검하고 새복음화, 재복음화, 사회복음화의 기치 아래 2000년대 사목 방향을 논의했다.
인천교구 시노드 역시 개막에 훨씬 앞선 1993년 교구 복음화위원회에서 교구의 중장기 사목계획 수립 필요성에 따라 처음 제안됐다. 이후 1997년 4월 준비위원회를 발족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고, 그후 열린 마당, 교구 및 본당 진단, 공의회 학교 개설 등을 통해 시노드 본회의를 준비했다.
2000년 11월 19일 폐막식 및 폐막미사에서 당시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가 서명 반포한 대의원회의 최종문서는 서문과 함께 시노드 전 과정을 통해 새복음화 재복음화 사회복음화 차원에서 논의된 16개 사목영역별 문헌 및 이를 토대로 한 향후 20년 인천교구 복음화 계획 수립 지침을 담았다.
인천교구 시노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뿐만 아니라 200주년 사목회의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교구 시노드 준비 중 사목회의에 대한 강의를 별도로 마련하기도 했으며 각 의안영역별 준비 과정에 있어서도 사목회의 의안의 내용을 비교적 깊은 관심을 갖고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수원교구
인천교구가 교구 시노드를 개막한 얼마 뒤인 1999년 7월 17일 수원교구는 주교좌 정자동성당에서 교구 시노두스(시노드) 개막 미사 및 1차 총회를 개최했다.
「새로운 복음화의 길 찾기」를 대주제로 한 수원교구 시노두스는 크게 두 가지 의안 영역에 초점을 맞췄다. 하나는 「교회 기초 공동체 활성화」이고 다른 하나는 「자율적인 젊은이 신앙 생활」이었다. 수원교구는 시노두스를 통해 이 두 가지 의안에 대한 새로운 사목 방향과 「주님이 원하시는 복음화의 길」을 모색했다.
수원교구가 200주년 사목회의나 다른 교구의 시노드들과는 달리 기초공동체와 젊은이 신앙 생활이라는 두 가지 의안에만 집중한 것은 시노드 개최와 진행의 부담을 덜으려는 현실적인 고려와 함께 바로 이 두 가지가 당시 교구의 가장 큰 현안이라는 점에서 집중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였다.
특히 교구장 최덕기 주교가 시노두스 폐막 뒤 분명하게 말했듯이, 『신학적 이론 차원의 최종 문헌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 방안과 시행 세칙들을 담으며 시노두스 실현의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1년 10월 11일 폐막미사를 봉헌함으로써 막을 내린 수원교구 시노두스를 통해 교구장 주교는 최종 문헌을 반포하고 「구역 반 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방안을 시행세칙과 함께 제시했다.
서울대교구
가장 최근에 개최된 서울대교구 교구 시노드는 규모와 작업 범위에서 가장 방대한 작업이었다.
서울대교구가 한국 교회 안에서 지니고 있는 비중과 역량, 인적 물적 자원의 면에서 볼 때 다소 늦은 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만큼 서울대교구의 시노드는 서울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서울대교구 시노드는 의안이나 의제 선정의 틀에 있어서 사목회의 의안과 상당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7개 영역별로 나눠진 의안 영역, 즉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청소년 청년, 선교 신앙교육, 교회운영, 사회복음화 등의 영역들은 200주년 사목회의 12개 의안들과 많은 점에서 비슷한 구조를 지닌다.
특히 애당초 서울대교구 시노드 준비 담당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과 한국교회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을 되살리는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한 서울대교구이니 만큼 교구 시노드 과정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폭과 깊이는 다른 교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풍부한 것으로 평가되는 서울대교구 시노드는 그러나 참여도의 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
특히 평신도의 참여도가 뜨거운 반면 성직자의 참여도는 상대적으로 눈에 띄게 저조했다. 물론 시노드가 진행되면서 준비위원회와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의 끊임없는 독려로 이같은 상황이 호전되기는 했으나, 시노드의 성패가 후속작업에 달려 있고 그러한 작업은 일선 사목자의 의지가 관건이 되는 만큼 이 문제는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더욱이 적지 않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소극적인 참여 원인 중 하나가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이 사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성찰을 요구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는 2003년 9월 28일 폐막식에서 후속문헌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를 반포했다. 이 후속교서는 앞서 언급한 7개 의안 영역별로 교구의 사목방향과 실천 방안들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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