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하다보면 이게 정말 대화일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관심을 가지고 상대를 배려하기보다, 각자의 주장에만 급급하고, 자신의 내면을 더욱 황폐하게 드러내게될 때가 바로 그런 때이다. 사실 이런 경우,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그저 우울한 독백일 뿐이요, 무관심으로 무장된 이기적 진술일 뿐이다.
「부조리」극의 대표적 작품으로 1969년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러한 관점을 잘 제시해주는 작품이다. 두 사람이 번갈아 얘기한다는 의미에서 대화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들의 대사는 모두 섬뜩하게 우울한 독백일 뿐이다. 「무관심」은 이상하게도 내가 소외시킨 상대에게 화살을 꽂지 않고 오히려, 그를 소외시킨 나에게 다가와 철저한 대가를 묻는다. 소외와 고독이라는 비극을 통해 나 자신이 자행한 부조리를 기어이 확인시켜 주고야마는 것이다. 잠언은 21장은 「무관심」과 「소외」야 말로 죽음의 한 형태임을 제시해 주고 있다.
21장
1절은 16,1.9에 언급한 바 있는 왕과 관련된 주제를 다시 제시한다. 더욱이 1~3절은 「야훼 경구」가 등장해서 16장과의 직접적 관련성을 추정하게 한다. 5~6절은 재물을 얻는 방법을 다루는데, 속임수나 조급함은 절대적으로 금물임을 가르쳐준다. 폭력은 폭력을 휘두르는 자, 바로 자기 자신을 휩쓸어가고(7절), 폭력적인 아내와 사는 것은 불행이다. 그녀와 사느니 집에서 가장 외진 방에서 살거나 광야에서 사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이다(9절 19절).
빈곤한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내게 똑같은 결과를 주는 것으로 대가를 치른다. 내가 빈곤해 졌을 때, 나 역시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13절). 성서 잠언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때로는 선물(혹은 뇌물)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시사한다(14절 잠언 18,1619,6). 그러나 뇌물이 주는 병폐에 대해서도 잊지 않는데 17,23을 참조할 수 있다. 중심을 일고 「헤매는 것」은 그 자체로 죽음일 수 있다(16절). 지혜로운 사람은 소중해서 지혜로운 군사 하나가 어리석은 용사들로 구성된 군대를 이긴다(22절). 게으름은 곧 자신을 죽이는 독이요(25절), 의인은 베풀고도 아까워하지 않는다(28절). 마지막 부분인 30~31절에서는 다시 「야훼경구」가 등장하는데 이는 21장의 첫 시작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설정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일의 결과는 하느님의 결정에 달렸음이 제시된다. 인간이 아무리 준비한다해도 결정적 승리를 허락하시는 분은 하느님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2장 1~6절
살아가면서 만나게되는 하느님의 경고에 민감한 자들은 지혜로운 자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 경고를 보고도 그저 무심히 지내다 화를 입는다(3절). 사소한 일상에서 하느님의 경고를 읽어내는 분별력을 강조한 이 구절은 27,12에도 반복되고 있고, 14,16에도 비슷한 내용이 소개된다.
5~6절은 「길」이라는 주제로 연결되어 있다. 특별히 어렸을 때 한 아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연습시키는 것은 장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임을 강조한다(15절도 참조). 7절은 돈의 힘에 대해서 언급한다. 9절은 「제 것을 나누는 것」이 곧 「복을 받는 비결」임을 제시한다. 10절은 부정적 태도나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주변에서 멀리할 것을 권고한다. 그래야 「다툼과 수치」가 그친다는 것이다. 11절은 마음과 입의 순결을 지킬 때 돌아오는 품위를 표현해주고 있다. 14절은 낯선 여인의 위험을 다시 제시한다. 1~9장에서 자주 등장했던 이 주제가 솔로몬의 잠언집에서는 여기서만 발견된다.
만들어진 지혜
견디기 힘든 일상, 본의 아니게 폭발하는 히스테리, 다른 삶을 살고만 싶은 부단한 열망, 이런 것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되는 삶의 원형들이다. 그런가 하면, 죽기를 작정한 사람처럼, 모든 욕망을 희생하고 주어진 삶에 성실 하려는 노력 역시, 인간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삶의 축이라 할 수 있다. 삶의 부조리와 불행은, 살아있음 자체가 하느님의 기적적 배려이며 사랑임을 의식하지 못함에서, 혹은 의식했어도 이내 망각하고 마는 데서 비롯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솔로몬의 잠언들은 결코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지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전통적 대의를 근거로 「만들어진」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잠언이 일관적으로 제시하는 메시지(즉,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둠)를 통해, 잃어버린 삶의 중심 때문에 불안하게 자신을 지켜봐야 했던 분들이, 생의 의지를 조금이나마 되찾으셨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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