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교회에서는 「예수님=하느님」이라고 가르치는데 저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습니다. 삼위일체는 후세에 신학자들에 의해서 제기된 신학적 주장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예수님=하느님」이라는 등식이 존재의 일치가 아닌, 뜻의 일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느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이 바라는 것이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이기에, 곧 두 분은 하나와 같다라구요. 이것이 잘못된 생각인가요?
A.『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예언자일 뿐이다. 아니 그저 한 인간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은 예수님 시대 때부터 제기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당하신 이론적 원인도 「예수님=하느님」 이라는 등식 때문이었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친구처럼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 필립보에게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요한 14, 9~10)라며 성부와 하나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단지 소크라테스나 마호메트와 같은 현자나 예언자이셨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인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를 대신하여 지신 십자가의 속죄행위는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영원」이라는 단어는 하느님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예수님 안에서 「살」이 되고(요한 1, 14), 또 부활하여 현양된 주님으로서 성령을 보낸다고 선언하는 신약성서에서 삼위일체가 실제로 계시됩니다. 성서는 삼위일체론을 발전시키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삶과 행위, 죽음과 부활을 통해, 또 그리스도에 의한 성령파견을 통해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하나이고 동시에 아버지와 구분된다고 천명하셨습니다(요한 10, 30 14, 9).
교회 신앙 안에 확립된 신앙 조문들은 학자들의 주장이나 이론에 종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친히 인도해주시는 생생한 체험의 결과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이 언제나 우리의 모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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