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하루
중학교 3학년생인 김가은(이레네)양은 오늘 아침에도 라디오 소리에 잠을 깼다. 학교로 향하는 버스에서는 늘 같은 시사뉴스가 흘러나온다.
수업시간에는 책은 물론 다큐멘터리 비디오와 교육방송 시청도 겸했다. 점심시간에는 친구들과 함께 촬영한 폰카 사진을 싸이월드에 올렸다. 이 시간 학교방송국에서는 다양한 음악과 사연을 들려준다. MP3를 들으며 학원으로 향했다. 거리를 걸을 때도 온갖 종류의 광고물들이 눈에 띤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웹캐릭터 검색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친구와 잠시 메신저 채팅을 하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아빠가 TV를 독차지한 관계로 컴퓨터 게임을 1시간 가량 했다. 주말엔 TV 음악순위, 개그 등의 프로그램을 꼭 챙겨본다. 내용을 모르면 왕따 되기 십상이다.
김양은 하루 일과 중 눈을 뜨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매스미디어(Mass Media)를 접한다. 그러나 부모님은 김양에게 『공부시간에 오락하면 컴퓨터 없애버린다』 『핸드폰 사용시간 좀 줄여라, 요금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말 뿐이다.
미디어란 인쇄매체, 시청각매체, 뉴미디어와 멀티미디어는 물론 의사소통과 관계된 모든 환경을 포함한다. 현대인들은 원하든 원치않든 신앙생활을 포함한 모든 생활 안에서 매스미디어와 함께 숨쉬며 살아간다. 미디어는 소위 「세상을 보는 창」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거부할수도 거부해서도 안되는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은 각종 미디어의 최고 소비층으로 미디어 내용들에 감정을 이입하고 모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가치관을 형성한다.
늘어가는 역기능
단순히 무분별한 정보습득을 비롯해 폭력, 부도덕성, 뉴에이지 사상, 게임중독, 쇼핑중독, 사이버범죄 등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미디어의 역기능은 우려할 만한 수준 이상이다. 텔레비전 영상은 자녀들의 언어의 근간이 될 정도. 현재 우리나라 10대 청소년들의 인터넷 이용률은 무려 81.6% 수준으로 일탈행동의 선두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미디어의 역기능에 대해 오래 전부터 염려해왔고, 첨단으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대안의 실현은 20세기와 별 다를 바 없는 제자리걸음 수준이라는 것이다.
특히 매스미디어로 인한 가족간 대화 단절과 유대, 공동체의식 약화는 심각한 수준이지만 대부분 가정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각자 관심분야로만 눈을 돌릴 때 가족의 공동가치관은 무너지고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은 차단된다. 부모보다 인터넷이 더 친숙한 자녀들, 연속극 시간이면 만사 제쳐놓고 TV에 빠져있는 어머니, 주일이면 컴퓨터 앞에서 오락삼매경에 빠져있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가족의 공동 가치관과 신앙생활을 찾기는 힘들다.
부모교육이 우선
가정은 건전한 도덕형성을 위한 가장 좋은 학교다. 즉 부모들이 우선 복음적 시각을 갖고 미디어를 분별있게 사용할 때 자연스럽게 자녀들의 의식을 올바로 세울 수 있다.
교회에서도 『부모는 매체에 대해서도 자녀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주는 교사로 적당하게 비판적으로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홍보수단을 사용하도록 가르쳐주어야한다』(교황 권고 가정공동체 76항)고 명시하고 있다.
일반적인 미디어 교육의 공통된 목적은 선택적이고 분별있는 미디어 사용과 이해에 도움을 줌으로써 비판적인 미디어 수용자의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비복음적인 가치관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복음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인 수용능력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부모들은 공교육에 대해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 등으로 미디어교육 인식 수준이 낮은 편. 실제 미디어교육을 각종 미디어를 활용하는 기술 정도로만 생각하는 정도다. 미디어의 해를 막기 위해서도 음란물을 차단하거나 TV 시청, 컴퓨터 사용시간을 제한하는 단편적인 시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의 의식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멀티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교육은 자녀들이 관심을 갖고 즐기는 미디어 분야와 그 내용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구체적인 내용이나 활용기술까지 알지는 못하더라도 자녀들의 생각과 관심을 알려고 노력하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
미디어교육 전문가들은 영화관람이든 게임이든 함께 참여하면서 자녀의 생각을 묻고 들어주는 작은 대화가 올바른 미디어접근 습관의 길잡이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어떻게 해라」라고 지시하기보다는 기존 교회홍보매체들을 자녀와 함께 나눠보거나 자녀의 관심을 돌릴 수 있는 다양한 가족활동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시도다. 매체일기쓰기, TV일기쓰기, TV속 세상 그림그리기 등의 프로그램도 쉽게 활용해볼 수 있다.
엄격한 미디어 접근 규제 또한 필요하다. 다만 이러한 경우 자녀와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주의가 필요하다.
매스미디어의 역기능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투자도 절실하다.
비복음적인 미디어의 영향력은 서서히, 강력하게 또한 교묘히 나타나기에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의식을 망가뜨린다. 현재 교회 안에서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미디어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미디어교육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교육과정과 교재를 개발, 보급하고 교사를 양성하는 실제적인 지원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미디어 감시를 위한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적극 요구된다. 현재 교회 내에서 실시하고 있는 미디어교육 및 지도자양성 프로그램으로는 살레시오 사회교육문화원(02-844-0388 )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 인터뷰 / 미디어 생태교육 전문가 김용은 수녀
“이런건 왜봐!” 규제 보다
“이건 뭐지?” 대화가 효과
『미디어교육은 주변의 모든 환경들이 어떤 의미로 와닿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가는 것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미디어 생태교육 전문가 김용은 수녀(살레시오회 사회교육문화원)는 『미디어는 단순히 인쇄매체나 전자매체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생태유기적인 삶의 환경』이라고 강조하며 『이 모든 환경에 대한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미디어교육(읽기)』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너무 폭력적인 게임은 하지 말아라」하고 제한하는 정도는 전자매체를 통한 미디어교육의 극히 일부분이다. 책상 위에 놓인 사과 한개를 보고 색깔로 상태를 짐작하거나, 내가 생각하는 사과의 이로운 점이나 사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 등을 읽어내는 것도 미디어환경 안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이다.
『미디어를 바라볼 때 「내 삶」과 연계시켜 내용을 읽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녀의 연령과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 지를 알아 올바른 사고를 형성하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올바른 미디어교육은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고 장기적으로 사고?학습능력을 높이며 인성교육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김수녀의 설명. 나아가 복음적 가치관의 접목으로 영성과 내적치유까지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미디어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작은 것에서부터 「상징」을 읽어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인지능력이 올바로 갖춰졌을 때 TV나 게임, 인터넷사이트 등을 분별력있게 접근할 수 있다.
구체적인 교육방법으로 김수녀는 「대화」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저게 도대체 뭐니? 왜 저런 것을 보는거지?』라고 말하기보다 『저건 또 새로 보는데 어떤 것이지? 엄마는 잘 모르겠구나』라고 묻는다면 자녀의 마음을 열어 대화하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것.
김수녀는 미디어 내용을 판단, 비판하기에 앞서 자녀와의 대화 조차도 어렵다면 함께 미디어를 접해주는 「현존」 자체만으로도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방법은 특히 나이가 어린 아이들일수록 효과적이라고.
아울러 김수녀는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이 밖에서 어떤 친구들을 만나는 지 유심히 감시하는 반면 어떤 내용의 미디어를 접하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며 『기본적으로 우리 아이가 어떤 미디어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내용을 즐기는 지 정도는 알려고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행동은 윤리도덕보다 심미적 느낌, 즐거움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며 『부모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책읽기나 영화, 게임 등의 취미생활 읽기부터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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