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고령화-요청되는 가톨리시즘
이제 「고령화」에 대한 가톨릭적 대안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차례다.
요청되는 가톨리시즘: 고령사회는 10년, 20년 후의 피할 수 없는 현재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는 고령사회의 문제를 개인이나 가정의 차원에서 무마해온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선진국들의 선례를 따라 점점 국가 차원의 경제.사회.문화 정책으로 풀어야할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교회는 이런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서 가톨릭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청에 직면해 있다. 이와 관련하여 크게 세 가지를 언급할 수 있다.
첫째, 「젊은 피」를 수혈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은 냉엄하다. 노화(老化)의 과정에 진입하면 그 다음 순서는 병들고 죽는 것이다. 교회 구성원의 고령화 현상 역시 이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의 젊은 층의 비율이 사회 안에서의 젊은 층의 비율보다 훨씬 뒤떨어지고 있고 나아가 그 감소세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젊은 피」를 수혈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 모든 「착한 목자들」의 거룩한 실험적 접근에 맡기고 그 원리(原理)만 언급해 본다.
그 원리란 다름 아닌 「신앙의 대물림」의 원리이다. 유다교는 민족종교라는 특성상 전도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끄떡없이 버텨온 것은 신앙을 대물림하는 비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셰마 이스라엘」(너 이스라엘아 들어라)을 목숨처럼 여기고 문자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었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 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 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 네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문설주와 대문에 써 붙여라』(신명 6, 4~9)
박해시대 교회가 존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신앙의 대물림이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신자들에게 이 원리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간혹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의 신앙교육에 소홀히 하는 것이 문제 중의 문제다』라고 말하는 사목자들을 만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교회(사목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신자들에게 그러한 사명을 지속적으로 일깨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차 책임은 교회에 있고 2차 책임은 신자들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모유전도법」이라는 이름 하에 엄마 품에서의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실효를 거두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개신교를 모방하고 싶지는 않다』며 쓸 데 없이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이 원리는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심지어 명령하시기까지 한, 탁월한 신앙교육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유아세례, 첫영성체, 주일학교, 견진성사 등을 꼬박 챙겨주는 것은 「신앙 대물림」 교육원리를 터득한 다음의 구체적인 방안일 따름이다. 그리고 결국 20~30대 신앙의 양상은 신앙대물림 교육의 성패에 따른 결과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둘째, 노년기의 종교적 욕구를 복음화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누구나 노년기에 접어들면 「죽음」을 내다보면서 생(生)의 의미를 묻고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밟는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종교에 대한 관심이 더욱 강해진다. 교회는 이를 「복음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로 삼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복음화」는 노인들에게 구원의 선물을 제공함과 동시에 여생을 행복하게 사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노후란 반드시 「쉬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과거에 비해서 10~20년 정도 더 여분의 세월이 주어지기 때문에 인생의 2모작 내지 3모작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로서의 의미가 더욱 커졌다.
이런 가능성 앞에서 교회는 노인들이 복음 안에서 그 동기를 발견하도록 학습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테면 노인대학의 커리큘럼을 보다 진취적으로 재편성할 수도 있다. 현재 여러 가지 노인학교 프로그램들(예, 건강상담과 진료, 오락 프로그램, 관광, 견학, 운동, 교양 강좌 등)이 사회와 차별성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반드시 복음적인 접근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노인들의 실존적 욕구 특히, 궁극적인 죽음과 내세에 관한 물음, 자신의 일생의 경험을 통합하는 과제 등을 복음의 빛으로 조명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
물론, 고령자들을 사도직의 주체가 되도록 조직화 해 주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인생의 연륜이 복음화의 역군이 되는데 밑천이 될 수 있다. 이 무한한 잠재역량을 조직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실버복지사업을 더욱 확장해야 한다. 기존의 규모나 방식을 한 단계 높여서 체계성과 효율성을 갖춘 실버복지사업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미 유럽의 교회에서 다양하게 시행하고 있는 모델들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특히 전문가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끝으로, 노령사회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데 자극이 될만한 개신교회의 성공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평택 소재 고덕중앙교회의 임석영 목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효도 프로그램」과 「장례문화」에 큰 관심을 가졌다. 초기 때부터 이 두 가지에만 전념한 결과 지역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어 10년 안에 자립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신자 300명이 합심하여 2000평 대지 위에 교회를 세웠고, 선교단체에 매달 500만원씩 후원하는 열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굳이 이 사례를 소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톨릭에 비교하면 신자 300명이면 「고작」의 수준에 해당한다. 구성원도 대부분 노인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해낸 일,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은 고수익의 가톨릭신자 3000명으로도 해내지 못하는 규모이다. 필자에게는 하도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와서 혹시 공감할 가톨릭신자가 없을까하여 소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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