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회의 의안이 폐막 이후 20년 동안 한국교회 안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실천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먼저 「성직자의 쇄신과 성화」를 제목으로 성직자의 신원과 영성, 직무와 사목활동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고, 이후 사제 양성과 사제 생활에 대한 내용을 알아본다.
200주년 사목회의 성직자 의안은 서론에서 민족 복음화의 성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쇄신과 복음화가 이뤄져야 하고 「그 쇄신과 복음화는 무엇보다도 성직자들의 쇄신과 성화가 선행되어야 한다」(2항)고 언명한다.
교회 쇄신과 복음화라는 과제는 교회가 세워진 이래 한 순간도 끊김없이 요청되어왔다. 그리고 이 과제는 교회가 참으로 그 시대와 장소에 걸맞는 빛과 소금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항상 깨어 응답해야 하는 것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역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완덕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소명을 받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양의 무리를 돌보는 사목자들은 우리 영혼들의 목자이시며 주교이신 영원한 대사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성덕과 열성, 겸손과 용기로써 자기 직무를 수행할 것이며…. 이렇게 수행되는 직무는 그들 자신들을 위해서도 성화에 뛰어난 방법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교회 헌장 제41항 참조).
200주년 사목회의는 이처럼 교회의 쇄신과 복음화가, 역사 안에서 그러했듯이 역시 한국교회가 민족과 역사의 참 빛이요 소금이 되기 위한 시대적인 요청임을 분명히 인식했고 그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성직자의 쇄신과 성화가 가장 절실하다는 것을 지적했던 것이다.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
사목회의 의안이 정작 회의 폐막 후 사장되다시피 했지만 그 기본 정신과 문제 의식, 강조점들은 이후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에 부분적으로 담겼고, 90년대 본격화된 교구 시노드들에서도 적지 않게 논의됐다.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에서는 제1편 「하느님의 백성」 제3장 성직자(제9~20조) 부분에 그 정신이 인용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공의회와 교황 및 교항청 문헌들, 교회법 등에 규정된 보편적인 내용들과 구체적 생활 규정 등만이 언급됐을 뿐 사목회의 의안의 특징적인 조항들은 제외돼 있다. 예컨대, 토착화의 강조나 교회 운영의 민주화, 분단 현실 등에 대한 문제 의식이나 권고 사항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교구 시노드들이 열리는 과정에서 사목회의 의안들은 직접, 간접으로 검토됐고 그 문제 의식과 강조점들이 시노드 폐막 후 발표된 최종 문헌들에 포함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인천교구 시노드
시노드 개최과정에서부터 사목회의 의안들을 신중하게 검토했던 인천교구 시노드 최종 문헌에서는 사목회의 의안의 내용 인용 부분이 교회법이나 공의회 문헌을 능가할 정도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인천교구 시노드는 성직자의 사목활동이 가장 먼저 복음적 사랑,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함을 서두에서 언급한다. 아울러 공동체가 성직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가 공동체를 위해 일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개인 생활에서도 「순수하고 검소한」 생활을 권고한다.
또한 평신도 사도직 활성화의 요청을 비롯해서 평신도들이 각자 자기 몫대로 교회와 세상에서 수행하는 사명을 인정하고 격려할 것을 천명하고, 나아가 한국적 현실 속에서 다소간 실천에 어려움을 예상, 본격 논의되지 않고 있는 종신 부제직에 대한 연구 검토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한편 한국 교회 사제들에 대한 여론과 세인들의 평가와 신자들의 성직자들에 대한 요구들이 시노드 문헌에 담겨 있다. 성직자 중심적, 권위주의에 대한 지적들이 90년대 이후 자주 논의되면서 그것들이 교회의 중산층화에 대한 자아 비판과 성찰과 함께, 성직자의 쇄신 요청의 주요한 소재들이 되고 있다.
인천교구 시노드 문헌에서는 이와 관련해, 성직자들을 향한 다양한 신자들의 요청을 담고 있는데, 특별히 사제들이 좀더 영성생활에 충실하고 체계적, 지속적 계획에 따른 사목활동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서울대교구 시노드
가장 최근에 열린 서울대교구 시노드는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다양한 주제의 연구 조사들을 병행함으로써 오늘날 한국 교회의 과제를 도출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려 했다. 비록 초기에 일선 사목자들의 저조한 참여율로 비관적인 전망을 낳기도 했지만 무사히 시노드를 마치고 이제 후속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폐막과 함께 발표한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의 성직자 영역은 사제의 양성과 직무, 생활, 전담 기구 등 4개 영역으로 나눠져 작성돼있다.
교서는 말씀을 선포하고 성사를 집행하는 사제의 직무를 상술하면서 특별히 주일의 의미에 대해 별도의 절을 마련해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주일 첨례의 중요성에 대한 신자들의 인식이 퇴색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또 전례 토착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별도의 절로 마련하고 있다. 사목회의 의안을 일관하고 있는 토착화의 요청은 성직자 의안에서 특별히 전례의 토착화에 대한 지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바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교서 역시 그 필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서에서는 이상적인 사제상에 대해 봉사하는 목자로서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즉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그리스도의 모범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교서는 때때로 사제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태도가 공동체에 해악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시 한번 봉사하는 직분으로서의 사제직을 요청한다. 사제의 생활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사제, 검소하고 예의바른 사제, 그리고 친교를 이루는 사제단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교구 시노드가 무엇보다 「친교의 교회론」, 「참여하는 교회상」의 실현을 지향했다고 설명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론을 바탕으로 하는 이러한 지향은 곧 200주년 사목회의의 지향과도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성직자 비판의 요지
오늘날 성직자에 대한 비판의 요지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권위주의적」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자신의 모든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탈피하고 봉사하는 교회로 거듭나고자 했었음을 상기한다면 한국교회는 여전히 공의회의 정신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많은 한국 사회에서 성직자들이 권위주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는 것은 여러 설문 조사들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 「한국 근현대 가톨릭연구단」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천주교의 현재 역할에 대한 부정적 평가 가운데 「권위적이다」라는 평가가 세 번째로 높게 나타났고 이는 대부분 성직자의 자세에 대한 평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천주교 내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이 「사제 중심적, 권위적 교회 운영」으로서 32.6%로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러한 성직자 혹은 교회 운영에 있어서의 권위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교회 내부에서 이어져왔다.
친교의 교회론을 바탕으로 한 공의회의 정신을 한국적 상황에서 구현하려 한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에서도 성직자는 평신도 사도직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지배자가 아닌 봉사하는 존재임을 지적함으로써 권위주의가 바람직한 성직자의 모습이 아님을 강조했다.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교서 성직자 영역에서는 『그리스도의 권위는 철저히 봉사를 위한 것』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사제는 성직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명심』할 것을 당부했다.
권위주의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성찰들은 우리 사회 안에서 특별히 탈권위주의의 요구가 대세를 이루고 사회 각 부문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하면서 더욱 가열됐다. 인터넷이라는 전례 없는 장이 열린 우리 사회에서 거침없는 토론과 다양한 언로가 열림으로써 성역과 금기에 대한 도전은 종교계로까지 확산됐고, 자칫 최악의 권위주의로 빠질 위험성이 상존하는 종교계 안에서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그리고 200주년 사목회의, 나아가 90년대 이후 잇따라 열린 교구 시노드들에서 논의된 성직자의 신원과 직분, 역할의 수행에 있어서 권위주의의 탈피는 긴급하고 긴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과제는 교회 운영에 있어서의 민주적 변화에 대한 요청, 평신도의 제 자리 찾기와 함께 수평적 쌍방향적 코드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와 교회에서 복음의 설득력을 높이고 교회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큰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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