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의 칼춤
다시 도올 김용옥 이야기이다. 요즈음 MBC TV의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특강에서 도올은 19세기말 최한기라는 인물의 기(氣) 사상에 기대어 자신의 기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기」가 우주만물의 운행의 원리이며 모든 존재의 궁극적 근거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그에게 「기」는 신(神)이다. 기가 신이기 때문에, 창조주(創造主)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엉터리」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몇 주 전 도올은 자신의 강의에서 『그리스도교가 믿는 신은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망발을 해댔다. 당시 강의의 분위기를 잠깐 재연해보면 이렇다. 신존재를 부정하는 대목에 이르자 도올은 칠판에 우주의 경계선을 긋고 핏대를 올리고 침을 튀기면서 말한다.
『어떻게 이 우주 밖에 「창조주」 하느님이 따로 존재할 수 있느냐 이 말야! 도대체 어디…?』
이어서 도올은 마치 그리스도교를 깨부수려고 작정을 한 듯이 유일신 신앙을 나름대로는 조목조목 부정해간다. 그러면서 방청객을 향해 그의 범신론적 무신론을 설파한다. 화면에 비친 방청객의 반응은 이미 비판력을 상실한 추종자의 모습들일 뿐이다.
이 정도는 약과이다. 그 이후의 강의에서 그리스도교를 제물로 삼은 도올의 칼춤은 극에 달했다. 도올은 자신의 무신론을 강변하기 위하여 니체(Nitzsche)를 끌어들였다. 그는 철학사에서 전후맥락과 니체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객관적인 진술은 생략한 채(이런 식이 늘상 그의 방식이었다!) 그의 「신은 죽었다」는 말만 뚝 떼어 인용하면서 또 다시 그리스도교를 공격하였다. 그는 니체의 「땅에 충실하라(Bleibt der Erde!)는 말에 기대어 내세(천국), 초월, 은총, 믿음, 희망 따위를 말하는 자는 저주받아 마땅하다는 논지의 열변을 토했다. 어느새 니체의 초인(超人)사상은 요즈음 젊은층이 집착하고 있는 몸가꾸기, 수행, 수련에 대한 두둔에 원용되고 있었다. 방청석의 분위기로 보아 하느님, 영혼, 신앙 따위는 이미 설자리를 잃고 있었다.
이렇듯이 도올이 하도 막무가내로 그리스도교를 비판하고 나서니까 몇 년 전 한 네티즌이 인터넷상에 다음과 같은 「도올의 출사표」를 올리기도 하였다.
『지금이요! 천하 13종교 가운데 기독교는 이미 3대를 거쳐 국민종교로 자리매김 하였소! 지금 이를 치지 못하면 우리 유교는 자멸하고 말 것이요! 나는 이걸 치기 위해서는 유교의 재해석에 달려 있다 생각하고 82년 귀국 이래 고전번역 작업에 몰두하였소! 이는 내 필생의 과업이며 내가 동양철학에 들어갈 때부터의 계획이었소! 이 사태를 바꾸지 못하면 내가 태어난 보람은 없는 것이오!』
도올이 이렇게 자신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상에 오른 글이기에 이 말의 표현 자체의 진위(眞僞)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필자에게는 그의 그간의 행태로 보아 내용은 사실과 능히 부합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그가 저렇게 명백하게 밝힌 바와 같이 도올의 공격 표적이 그리스도교인 것은 틀림이 없다. 이점에서 도올의 생각은 요즈음 알게 모르게 확산되고 있는 신흥영성 계열의 사상과 같은 맥락에 있다. 어떤 이름을 내걸었든지 이들 신흥영성가들은 유일신, 창조신, 인격신을 거부한다.
문제는 도올의 강의가 대단히 선동적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선동적인 강의는 결국 그러지 않아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하에서 죄책감 없이 속 편하게 살기 위하여 「신」의 존재를 부정할 핑계거리를 찾고 있던 20~30대 젊은이(물론 나이 들은 팬들도 포함됨)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고 있다. 도올은 당연히 메시아가 되는 셈이다.
도올 비판에 부쳐
안타까운 것은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도올의 팬이 제법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정작 도올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서, 그의 파격적인 언사에 홀려 박수를 보낸다. 그가 그리스도교를 근본에서부터 부정하고, 중세철학의 흐름을 논하는 중에 가톨릭 철학을 언급하면서 당시 가톨릭 사제들을 싸잡아 「서양 신부새끼들」이라는 육두문자를 불사하고, 예수가 「창녀의 소생」(노자와 21세기(3), 65쪽)이라는 막말까지 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고 성모 마리아고 간에 닥치는 대로 폄하하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는 궤변론자인 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도올의 안하무인격인 「그리스도교 죽이기」 언사에 대하여 그동안 개신교계에서는 다양한 반론의 목소리가 있어왔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측에서는 거의 공적인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그러다가 제풀에 꺽이겠지』하는 식의 방관이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요즈음 필자는 「침묵」이 최선의 방안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피해상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성균관대 유교학과 학장 이기동 교수가 「도올 논어 바로보기」라는 비판서의 서문에 밝힌 논지에 크게 공감한다. 이기동 교수는 도올의 강의를 「돌팔이 약장수」가 「엉터리」 약을 시중에 유포시키는 것에 비유한다. 『엉터리 약은 몸을 상하게 한다. 그러나 엉터리 사상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마음이 상하는 것은 몸이 상하는 것에 비해 그 해로움이 더욱 심하다』(7쪽)
이에 필자는 앞으로 몇 번에 걸쳐 도올의 사상에 대한 가톨릭교회 사목자로서의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대체로 필자는 총론적으로 도올을 비판해 볼 것이다. 각론 즉 서양철학, 신학, 동양철학(그중에서도 노자, 유교, 불교) 등의 영역을 넘나들며 「럭비공」 튀듯이 그가 한 발언들에 대한 평가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필자와 같이 책을 읽다가 「이건 안닌데」하는 생각이 들고, TV 강의를 듣다가 「저건 아닌데」하는 마음은 들지만 통쾌하게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할 수 있을 만큼만 식별을 위한 「정보」를 드리고자 한다. 그의 쾌도난마식 그리스도교 죽이기 작태에 대해 통분하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반박할 「언어」와 문제를 직시할 「눈」을 제공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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