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의 양성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며 과제이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십사고 청하시오」(마태 9,37)라고 하신 예수님은 오늘도 한국교회에 똑같은 요청을 하고 계신다. 성직자나 수도자나 평신도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 요청으로부터 예외가 될 수는 없으며 또한 무관심해서도 안된다』(200주년 사목회의 성직자 의안 23항)
사제 성소의 계발과 양성은 교회 역사 안에서 그 어느 때를 막론하고 결코 소홀히 취급될 수 없다.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 성직자 의안은 제2장 「성직자 양성」에서 성소 계발과 성소 육성, 그리고 사제 연수 등 세 부분으로 나눠 이에 대한 한국교회 전체 차원에서의 노력이 경주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계발의 전제로써 신앙 쇄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데, 즉 『교회 공동체가 훌륭한 신앙 생활을 한다면 성직의 성소가 나날이 증가할 것이며 계속 훌륭한 성직자들이 배출될 것』이라고 말한다.
성소 감소 대비해야
하지만 의안은 여기서 성직 지망자의 부족 현상이 심화되어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각 가정과 본당, 수도회 등 모든 차원에서 성소 계발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들 자신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한다. 이에 따라 특별히 성소 육성을 위한 전담 기구와 전담자를 교구, 수도회 등에서 설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처럼 성소의 위기에 대한 인식은 이미 20년 전부터 한국 교회 안에서 누차 지적돼왔다. 다행스럽게도 한국교회는 아직도 사제 성소에 있어서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오래 전부터 거론되어온 사제 성소의 위기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모두 7개 대신학교가 설립, 운영되고 있다. 새로 신학교가 설립될 때마다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사제 성소의 감소가 불보듯이 뻔한데, 그리고 교구간의 소원함이 더해가는 상황에서 교구마다 신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사제 성소의 감소에 따른 문제는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신학교 설립이 교구내에서의 사제 성소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는 진단도 있다. 실제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나오는 교세통계를 보면, 대신학교의 성직 지망생 현황에 있어서 꾸준하게 재적생 총수가 유지되고 있으며 신학교가 있는 일부 교구에서는 향후 몇 년 동안은 사제 수품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상 이같은 추세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에서도 지금까지 안정적인 사제 성소를 유지했지만 앞으로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징조들이 보인다고 지적한다. 즉 「극단적인 물질주의, 개인주의, 위기 가정의 증가, 출산율의 저하」 등 성소 감소에 영향을 미칠 징후들이 우리 사회에서 짙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성소 계발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며 현대 세계와 사회의 세속화 경향 속에서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성소 계발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과제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성소 육성의 여러 영역
사목회의 성직자 의안은 이어 「성소 육성」의 제하로 신학생들의 지적, 영적, 생활교육 영역에 대해 상술한다. 의안에서 말하는 성직 지망자들에 대한 교육은 사목회의의 토착화 지향을 분명히 드러낸다.
즉 지적 교육에 있어서 의안은 우선 일반 교양과정에서 어학과 함께 우리 문화 유산을 이해하는 동양문화와 사상을 소개하고 현대사회의 이해를 돕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 과정에서는 현대인의 사상적 바탕을 이해하고 신앙을 지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교육할 것, 신학 과정에서는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모색한다.
영적 교육에서는 성직자 이전에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성장할 것을 지향하고, 생활 교육은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전인적 인간으로 변모되도록 교육할 것을 강조한다.
사실상 오늘날 세계와 사회 안에서 전인적 인간으로의 성장은 사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모습이기도 하다.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문헌은 이에 대해 「인간적 양성」이라 지칭하면서 『인간적인 덕들은 올바른 자아 성장과 자기 실현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제직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인천교구 시노드 최종문서는 사목회의 의안의 말을 빌어 성숙한 신앙인, 독립적이며 책임감을 갖춘 전인적 인간으로 변모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한편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문헌은 여기에 더해 「사목적 양성」을 덧붙이면서, 오늘날 중요하게 떠오르는 다양한 특수 사목 분야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도록 양성돼야 한다고 요청하는 바, 이는 사목회의 의안 성직자 의안 32항에서 다원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문가로서의 양성 필요성을 지적한 것과 관련된다고 하겠다.
‘현대의 사제 양성’
한국교회의 사제 양성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은 매우 풍요로운 시사를 준다. 사목회의 성직자 의안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들 안에서 그 핵심을 간추린 것이라고 볼 때, 공의회 이후 전개된 세계와 교회의 변화를 반영해 작성된 것이 바로 「현대의 사제 양성」이라할 수 있으므로, 이 문헌은 사목회의 의안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문헌은 1990년 10월 한달 동안 바티칸에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 제8차 정기총회의 후속 문헌으로서 1992년 발표됐다. 특히 이 문헌의 주요 내용들 중에는 사목회의 진행을 총괄하면서 실무를 관장했던 정의채 신부(서강대 석좌교수)가 제기했던 제안들이 대폭 수용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의미가 깊다.
「현대의 사제 양성」은 사제 양성의 여러 영역을 인간 교육, 영성 교육, 지적 교육, 그리고 사목교육으로 나눠 다루고 있는데 특별히 문화의 복음화, 토착화와관련해 늘어나는 요구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한편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8차 정기총회에 참석해 「종합대학 안에서의 신학생 교육」에 대해 발표한 정의채 신부는 사제와 평신도 관계의 새로운 신학적 정립 요청과 함께 교육부터 같이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주장했다.
사제의 생활
오늘날 가톨릭 사제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는 다소간 양상을 달리한다. 일반인들에게 로만칼라, 수단으로 상징되던 가톨릭의 성직자들은 지금까지 독신과 정결, 청렴과 사심 없이 세속적 욕심을 버린 사람들로 일반적으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다른 한편으로 권위주의와 독선, 때로는 사치스런 생활과도 연결되곤 한다. 특히 이러한 인상은 교회 안, 가톨릭 신자들에게서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사제의 생활은 그 본연의 신원에 걸맞게 이뤄지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 분명하다.
사목회의 성직자 의안은 「사회 생활」과 관련한 부분에서 『복장과 언행에서도 마땅한 예의와 친절』을 권고하고 『순수하고 검소한』 생활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한다.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교서는 「사제의 생활」을 따로 떼어 기도하는 사제, 검소한 사제, 예의 바른 사제를 강조하고 사제단이 깊은 연대와 친교를 이룰 것을 권고하고 있다.
수도자가 사도직 활동에 과도하게 치중할 때 자신의 본연의 소명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될 수 있듯이, 성직자가 기도로써 사목 활동의 바탕을 놓지 못할 때 자칫 사제 자신에게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려는 신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수 있다.
교서는 또 사제는 『복음적 가난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면서 소박한 삶을 영위』할 것을 권고하고 아울러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언어 사용과 행동은 신자들이 떠나갈 빌미를 제공한다고 지적했다.
200주년 사목회의 12개 의안 중 첫 번째 의안인 성직자 의안은 성직자의 신원과 정체성, 성소 계발과 양성,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성직자에 대해 언급했다.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성직자의 본질적인 신원과 소명은 분명히 다르지 않다.
의안은 성직자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신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사람으로서 수도자, 평신도와 함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주역임을 지적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성직자는 권위주의와 독선, 비민주적 교회 운영으로 자주 비판받고 있기도 하다.
날로 세속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회의 성직자들은 더욱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제로서, 하느님 백성을 함께 구성하는 평신도, 수도자와 함께 참된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사목회의 의안의 메시지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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