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가설적 시나리오
도올은 1980년대 초반부터 포문을 연 이래 줄기차게 그리스도교를 비판해 왔다. 나중에 확인해볼 터이지만, 그의 그리스도교 비판은 큰 틀에서 보면 하나의 가설(假設)적 「시나리오」를 입증하려는 의도로 압축될 수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앙전통은 교회 기득권층(성직자, 수도자, 철학자 등등) 일당들이 작당해서 2000년 동안 서로 입을 맞춰 꾸며낸 기만이요 사기극』이며, 이를 뒤집어 말하면 『그리스도교 신자들이란 저런 날조된 사기극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맹신적 내지 광신적 피해자』라는 가설이다.
이를 입증하려는 그의 저술들에는 현란한 용어, 거창한 이론들이 동원되기에 독자들이 쉽게 현혹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그의 논리에는 매우 유치한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에 그것만 드러나면 그의 주장은 여지없이 허물어지게 되어있다. 곧 도올은 인간이 지닌 보편적 이성의 상식적인 판단능력을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2000년간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살던 이들이 『하느님은 존재하고,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이 「사기극」의 공모(共謀)에 동참할 수 있으며, 아무리 무지몽매하다고 전제하더라도 어떻게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2000년간 저 허구적인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만큼 꼼짝없이 기만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다 바보요 천치요 영적인 「아편 중독자」였단 말인가?
인류역사를 더듬어보건대, 역사의 심판은 냉엄했다. 아무리 그럴 듯한 사상도, 아무리 강력한 세력도 한 두 세기를 지속하며 추앙받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이단사설은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고 사라져야 했다. 억울하게 재판받았던 진리는 또 긴긴 역사 속에서 반드시 복권되었다. 그런데 2000년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그래서 이 기간의 시험을 거쳐 살아남은 종교를 세계 4대 종교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인류는 오늘날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불교, 유교의 진리성을 공히 인정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도올의 학문적 배경
그리스도교에 대한 도올의 언사에는 시종일관 반감, 혐오, 증오심이 깔려있다. 그는 왜 그리스도교에 대해 이처럼 무조건적인 억하심정을 갖게 되었을까? 그의 학문적 배경을 살펴보면 얼핏 짐작이 간다.
도올의 이력에 나타난 학문여정은 이렇다. 1948. 6. 14 천안출생/ 고려대 생물과, 한국신학대학, 고려대 철학과 졸업/ 대만 타이완대학 철학과(?74석사)/ 일본 도쿄대학 중국철학과(?77 석사)/ 미국 펜실바니아대학(박사)/ 미국 하버드대학(?82 철학박사)/ 원광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90~96)
가히 「편력」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학과를 섭렵하였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이는 그의 학문적 관심이 얼마나 방대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배경에서 그는 수많은 저술과 강의를 소화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통한다. 「노자와 21세기 上下」, 「노자철학 이것이다 上下」, 「여자란 무엇인가」, 「노자:길과얻음」,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등의 저작을 통해 무시할 수 없는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그는 흥행성이 있는 인기강사이다. EBS 특별강연 「알기쉬운 동양고전 노자와 21세기」(1999년), KBS1 TV 「도올의 논어이야기」 강의(2000년 10월~2001년 5월), EBS 「도올, 인도를 만나다」 강의(2002년 8월~12월), MBC 「우리는 누구인가」 강의(2004년 1월~현재)를 통해 「박해」와 「찬사」를 동시에 받아왔다.
전혀 전후 상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런 학문여정과 저술 및 강연활동에는 그 나름의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그의 기철학(氣哲學)을 정립하고 설파하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말한다. 기철학은 그의 모든 주장의 대전제이며 핵심이며 목표이다. 그는 그의 기철학의 출발점이 체험적 깨달음이었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관절염을 심하게 앓던 그는 어느 날 소변을 보다가 자신과 우주가 하나로 느껴지는 체험을 했다고 술회하였다. 또 그는 어느날 새의 울음소리를 듣다가 자신의 안팎이 하나로 통하는 체험을 했다고 밝혔다. 이런 체험들이 그의 일원론적 기철학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기철학은 그의 사상이자 종교가 된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는 자신이 창도한 기철학의 맹신자이며 증거자라고 말해야 옳다. 이는 필자의 결론이 아니라 「도올의 콘택트렌즈」(개혁주의신행협회)에 게재된 김호환 목사의 분석에 의거한 것이다. 김목사는 서울 대학원 철학과?총신대학신학대학원 졸업,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미국 퍼스픽웨스턴 대학?애쉬랜드 신학대학에서 각기 철학과 신학을 전공으로 철학박사와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보기 드문 학자이다. 이 책에서 그는 그의 튼튼한 학문적 기반 위에서 도올의 사상을 객관적으로 파헤치는데 성공했다. 그간 나름대로 도올의 사상을 파악해 왔던 필자는 김목사의 견해에 100% 동의한다. 김목사의 분석에 따르면 도올은 노자(老子)의 도(道)사상에서 바로 자신이 내세우는 기(氣)의 실체를 구명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는 우주가 노자의 주장대로 『그렇게 있었던(What was so of itself) 것 같이 지금도 진행하고(It is doing so of itself)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진행할 것(It will be so of itself)』(노자와 21세기(上), 227쪽)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도올이 「우주=기(氣)=도(道)」라는 이 명제를 교조(敎條: dogma)화하여 이를 파쇼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목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도올은 우리를 논리적으로 설득한 적이 없다. 소위 기독교의 지난 과거의 선교의 문제점이라고 본인이 지적했던 「제국주의적 선교주의」(imperialistic missionism) 태도에 대해 자신이 정통 기독교에 보낸 냉소만큼이나 자신이 지금 행하는 태도, 즉 자신의 노자 이해를 진리의 척도로 생각하고 다른 종교나 기독교에 대해 무차별적인 자기 방식대로의 대입(代入)과 비난을 삼가지 않는 것은 동일한 제국주의적 발상임을 깨달아야 한다』(김호환, 도올의 콘택트렌즈, 22쪽)
바꾸어 말해서 도올은 그리스도교의 구원독점주의와 독선을 비판하면서 그보다 더하게 「노자」 독선주의에 빠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도올은 그의 일원적 기철학에 반하는 모든 사상은 그것이 불교이든, 유교이든, 기독교이든 모두를 적으로 간주하고 싸잡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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