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후 한국사회와 가톨릭교회」를 주제로 한국가톨릭신학학회(회장=서경돈 신부)가 6월 11일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발표한 학술심포지엄은 그간 학계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 끼친 가톨릭교회의 기여와 역할을 종합 정리, 향후 관련 연구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전개된 2년 과정의 최종 연구발표 자리이기도 한 이날 심포지엄에서 연구진들은 인권과 인성문제를 중심으로 역사학, 여성학, 교육학 등 3개 영역 5개 주제로 나눠 발표했다. 심포지엄의 주요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 ‘해방이후 가톨릭교회의 인권운동’/ 역사학
▶발표자=차기진(한국가톨릭신학학회 책임급연구원), 이경수 신부(대구가대 교수), 강종훈(대구가대 교수)
자각·성장·확대기로 구분
민족화해운동으로 승화돼.
해방 이후의 가톨릭 인권 운동사는 한국 현대사와 교회사라는 두 가지 요소를 염두에 두고 해방 이후부터 1967년까지는 「자각기」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이 한국의 사회 현실 안에서 구현되어 가는 1968~1979년의 시기는 「성장기」로, 1980년 이후 현재까지는 「확대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자각기에 있어서 인권 운동은 시혜적인 차원에서 전개해나갔다. 가톨릭교회는 가톨릭 구제회의 활동과 구라사업, 성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활동 등 당시 경제적인 어려운 환경속에서 생존권 회복 운동 내지 경제적 권리 획득을 중점적으로 실천해 나갔다. 이처럼 한국 가톨릭 교회는 구한말 이후의 굴절된 역사 과정에서 단편적으로 체험해 온 경험을 거울삼아 해방 공간의 사회 현실 안에서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자각하게 되었고, 이를 현실에 적용시켜 나갔다고 할 수 있다.
성장기에는 무엇보다도 가톨릭 교회가 사회정의 운동에 직접 뛰어드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 「한국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가 창립되고, 다음해에는 원주교구에서 부정부패 추방운동을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불의와 부정, 인권 탄압과 독재 정치에 저항하는 교회의 사회정의 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1974년 지학순 주교의 납치, 구속 사건과 관련된 정의인권운동, 1974년에 결성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활동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노동?농민 운동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72년에 출범한 「한국가톨릭농민회」는 함평고구마사건, 안동농민회사건 등을 통해 내부 결속력을 다지면서 농촌 현장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처럼 성장기의 인권 운동은 공동선과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모든 신앙인이 함께 「교회의 사회 참여」라는 현실적인 당위성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방향에서 전개, 한국 사회의 인권 운동을 이끌어나간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욱 컸다.
1980년 이후의 확대기에 와서 한국 가톨릭 교회의 사회정의 운동은, 비록 70년대의 역동성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지적도 있어왔지만, 시민 중심의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또 그동안 축적되어 온 교회의 내적 기반은 90년대에 고양된 통일운동 내지는 민족 화해와 일치 운동을 천주교 사회 운동과 일치시켜 나갔다.
노동 운동 대신 1985년 「천주교 도시빈민사목협의회」의 창립을 계기로 도시 빈민 운동이 활기를 띠게 되었고, 농민 운동은 우리 농촌 살리기 활동을 중심으로 상당한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농어촌 문제와 도시 빈민의 탄생, 빈부 격차의 심화, 사회 복지에 대한 인식 등이 이러한 인권 운동의 확대에 일조를 하였다. 한마디로 이 시기의 교회 인권운동은 현장안에서 민중과 호흡해야 한다는 의도 아래 영역을 확대, 새로운 방향으로의 변화를 모색해 나갔다는 데 특징이 있다.
■ ‘…가톨릭여성의 사회복지활동과 인권운동’/ 여성학
▶발표자=이인숙(한국가톨릭신학학회 전임연구원), 박태범 신부(대구가대 교수), 성명숙(한국가톨릭신학학회 전임연구원), 남인숙(대구가대 교수)
빈민구호 전쟁고아 돌보며
사회발전과 복음화에 기여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사회복지활동은 주로 가톨릭 여성 수도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각 활동수도회의 여성수도자들은 창립자의 정신에 입각해 「전쟁과 해방으로 혼란한 시기에 가난하고 버려진 자들을 도우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빈민 구호사업, 전쟁고아를 돌보는 사업, 의료 및 교육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한국사회 발전과 복음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수도자들의 원조사업은 「선교 목적 차원」이 아닌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는 「인권적 차원」에서 이뤄졌다. 60~70년대에 들어서는 보다 현실 참여적인 근로청소년, 공장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으로 전환하게 된다.
80년대 접어들어서는 가치관 혼란, 구조적 모순, 기타 여러가지 불합리한 사회제도 등에서 야기된 미혼모, 비행청소년, 정신.지체장애자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가 됐다. 이에 따라 가톨릭교회 내 사회복지사업 분야도 기존의 단순한 고아 양육사업에서 장애인시설, 어린이집, 유치원 등의 보육시설이나 특수사목 시설로 목적을 변경하게 됐다.
90년대 들어서는 한국사회에 사회복지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사회복지 부문에 민간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였으며 이에 가톨릭교회가 합류, 각 수녀회들이 사회복지시설을 대대적으로 지원 혹은 인수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열악한 제정상태 때문에 잘 해내지 못했던 사회복지활동을 각 수녀회들이 인수, 헌신적 봉사와 뛰어난 복지시설 운영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음으로써 지역사회와 일반 시민들에게 가톨릭교회의 위상과 이미지를 높인 것도 사실이다.
가톨릭 교회 내 여성인권운동은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창설된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를 통해 1970~1980년대 한국 가톨릭교회가 노동운동과 인권운동, 특히 여성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발점이 됐다.
가톨릭 교회는 산업화 초기에 좀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고자 도시로 몰려든 시골 여성들 대부분이 매춘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보호시설을 설립했고 나아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현상의 결과로 나타나는 가출 청소녀 문제, 미혼모 문제, 가정폭력 피해 여성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복지시설을 설립, 운영하는 노력을 전개했다. 교회는 아울러 외국인 여성 노동자를 포함한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에도 사목적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사회에서 소외여성인권운동은 대부분 캠페인, 집회, 전단배포 등을 중심으로 전개해 왔다면 가톨릭 교회는 보호시설, 즉 쉼터를 중심으로 이들 여성들을 선도보호하고 재활교육을 시켜 건전한 삶을 살도록 유도해 왔다. 또한 가톨릭 교회에서 운영하는 쉼터들은 일반 시설과는 달리 가톨릭의 인간 존중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영적인 전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다.
■ ‘해방이후 가톨릭교회의 인성교육’/ 교육학
▶발표자=김정희(한국가톨릭신학학회 전임연구원), 서경돈 신부(대구가대 교수), 류영숙(한국가톨릭신학학회 전임연구원), 정일환(대구가대 교수)
입시위주 지식편중 교육
인성교육 이념구현 한계
2001년 국내 가톨릭계 학교는 82개교(초등학교 6개, 중학교 27개, 고등학교 38개, 대학교(전문대학 포함) 11개)로 일반 학교에 비해 인성교육과 관련된 다양하고 지속적인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과열된 입시위주의 교육과 경직된 학교제도, 원활하지 못한 교육지원체제 등으로 인해 인성교육보다는 입시위주, 지식편중 교육으로 가톨릭계 학교의 교육과정을 올바른 이념과 정신으로 구현하는 데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는 가톨릭 교육의 목적인 전인적.총체적 인간 양성을 위한 원칙을 확립하고,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인성교육의 심화로 그리스도의 교육관에 입각해 이웃과 지역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창의적.전인적 인재를 길러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해방이후 가톨릭의 사회교육은 특히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을 중심으로, 그리고 사회의 토대가 되는 가정을 중시하는 혼인교육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가나강좌, 행복한 가정운동, 교회 가정위원회의 활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재소자를 위해 교정교육활동 등도 펼쳐왔으며 아동 및 청소년들을 위해 보육무의탁 아동 보호 활동, 도시 빈민지역 아동을 위한 공부방 활동 등과 청소년을 위한 기술교육과 야학활동, 청소년 보호시설 소공동체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또 산간학교 등을 통해 자연과 더불어 단체생활을 통한 산 신앙교육을 전개해왔다.
이처럼 가톨릭 사회교육운동은 가톨릭 교회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아동·청소년들의 전인적인 발전,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학교교육에서 소홀히 하고 있는 인성교육을 보완하는 역할까지도 담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톨릭 교회가 실시해 왔던 사회교육의 자료 분석을 토대로 앞으로 프로그램의 다양화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에 대한 교회의 적극적인 개방과 디지털 시대에 맞는 다양한 매체를 통한 사회교육활동의 홍보에도 더 힘써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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