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의 마지막 부분 30~31장은 4개의 작은 잠언집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굴의 잠언(30, 1~14)
1절은 이 잠언집을 『마싸 사람 야케의 아들 아굴의 말들』로 소개하고 있는데, 「마싸」는 북 아라비아에 해당되는 지명이어서 이 잠언들이 외국 기원을 두고 있음을 암시한다. 전반부는 인간의 지혜가 하느님의 지혜에 비해 얼마나 불완전한 지를 제시한다. 7절 이하에서는 저자 자신의 기도가 등장하는데 『부유하게도, 가난하게도 하지 마시라』는 간청이 큰 공감을 준다. 배부르면 『주님이 누구냐?』하며 자만할까 두렵고, 가난하면 도둑질을 하여 주님의 이름을 더럽힐까 두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8~9절).
숫자 잠언(30, 15~33)
이 부분은 예전에 한 번 언급한 바 있던 「숫자 잠언」과 연결되어 있다. 숫자 잠언이란, 일정한 숫자가 등장하고 이어 그 숫자에 1을 더한 숫자가 이어지는 양식을 말한다. 이 잠언의 처음 시작에는 「둘」(15절 a)이 등장하고 이어 「셋」, 「넷」이라는 숫자들이 연이어 등장한다(15절 b). 그리고 이러한 패턴은 계속적으로 반복된다. 이 잠언집은 서두에 만족할 줄 모르는 이들을 「거머리」에 비유하고 있다. 이들은 『배부를 줄 모르고, 충분하다 할 줄 모르는 이들』이다(15~16절). 후반부에서는 자연계와 사회 생활을 연결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는데, 24~28절에서는 지혜로운 짐승 넷(개미, 너구리, 메뚜기, 도마뱀), 당당하게 걸어다니는 짐승 넷(사자, 수탉, 숫염소, 임금)이 소개된다.
마싸의 왕 르무엘의 말씀들(31, 1~9)
이 잠언도 아굴의 잠언처럼 「마싸」라는 지명과 연결되어 있는데, 태후(왕의 어머니)가 젊은 왕에게 주는 가르침이라는 설정이 특징적이다(31, 2 참조). 지금까지 소개된 잠언은 이스라엘의 가정 지혜가 주로 아버지에 의해 전달되었음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특히 1~9장). 어머니의 이름은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아들의 이름은 르무엘로 되어있다. 이 이름 역시 이스라엘 이름이 아니며, 스스로를 「왕」의 신분으로 밝히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의 왕인지도 알 수 없다. 미래의 통치자에게 그의 임무와 권리를 가르치는 것은 지혜문학 전통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인데(예: 이집트의 「아멘엠헤트」와 「메리카레의 가르침」 등), 이를 잠언에 삽입시켜두었다는 것은, 그 내용을 비단 왕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보편적 가르침으로 대중화하였음을 암시한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가르침의 내용은 「독주」와 「여인」에 대한 경고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둘의 위험에서 빠져나오기가 젊은 아들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다.
현숙한 부인을 찬양하는 알파벳 시(31, 10~31)
이 부분은 매 절마다 히브리어의 알파벳 순서를 따라 그 첫글자로 시작되는 정교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기법을 「알파벳 시」라고 부른다. 잠언의 마지막 부분에서 제시되는 여성의 이미지는 지금까지의 부정적 이미지를 수정해주고 있다. 「좋은 아내」(히브리어 「에셋 하일」, 유능한 아내라는 번역이 더 어울릴 듯)는 부지런하며(13~16, 19, 24, 27), 집을 잘 지키고(21~22, 25), 상냥하고(26), 베풀 줄 알며(20), 남편과 아들을 성공하게 만드는(23, 28~31) 여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는 중요한 자질은 주님을 경외할 줄 아는 지혜(30절)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가장 마지막 자리에 배치함으로써 그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우아함은 거짓일 뿐』이고 『아름다움 역시 헛것일 뿐』임을 강조하면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야말로 가장 능력있는 여성임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잠언에 대한 고찰을 마치며
지금까지 우리는 성서의 잠언을 살펴보았다. 잠언의 각 구절이 품고있는 삶에 대한 성찰, 하느님과 인간의 운명적 관계 등은 인간 누구나를 감동시키는 보편적 힘으로 다가와 주었고, 잠언의 그러한 예리한 감각과 지혜로운 통찰은 실패와 고통으로 응축된 정직한 삶의 산물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가르침을 토대로, 내게 주어진 삶을 정직하게 만나고 그것을 조용히 수용하는 일일 것이다. 삶은 얄팍한 허위와 교만을 용납하지 않는 다는 것, 하느님께 대한 순수와 열정, 경외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지능.지략을 뛰어넘는 진정한 지혜라는 것을 수백 수천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라도 깨닫게 될 때, 나는 비로소 내 자신의 진실과 괴리되지 않는 삶, 얼굴,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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