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외신종합】 중세시대를 비이성적인 암흑기로 묘사하는 주된 도구가 되어온 종교재판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연구서가 발표됐다.
중세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은 종종 종교적 독단과 맹목적인 야만성이 결합된 것으로 중세 암흑기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으로 인식돼왔지만 역사적 사실은 이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의 역사학자인 아고스티노 보로메오는 6월 15일 교황청에서 「종교재판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의 기록들」이라는 제목의 783쪽 분량의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고 『역사가들은 더 이상 종교재판을 가톨릭 교회를 공격하거나 옹호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로마 라 사피엔차 대학교 교회사 교수인 그는 이제 종교 재판에 대한 논쟁은 『진지한 통계 자료들에 바탕을 둔 교회사적 연구의 차원으로 접어들었다』고 말해 단순한 편견과 선입견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보로메오는 지금까지는 프로테스탄트 국가들 안에서 종교재판에 대한 「검은 전설」이 시작됐고 이에 대해 객관적 관점을 취하지 못한 가톨릭 호교론자들이 반박하는 식이었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1998년 교황청 비밀문서고를 개방함으로써 이제는 연구에 상당한 진전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혹독한 종교재판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스페인에서 1540년부터 1700년 사이에 모두 4만4674건의 재판이 이뤄졌는데, 그중 1.8%만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그 중 대부분이 궐석 재판으로 이뤄져 인형이 대신 처형됐고 실제로 처형된 사람은 0.1% 뿐이다.
악명 높은 「마녀 사냥」에 대해서도 교회법정은 일반 시민 법정보다 더 엄정한 조사를 진행해 스페인의 종교재판 역사상 총 12만5000건의 재판 중에서 59명만이 사형 선고를 받았고 이탈리아에서 36명, 포르투갈에서 4명이 선고를 받아 총 99명에 그친다.
이러한 수치는 근대 시대에 유럽 전역의 시민법정에서 10만건의 재판이 열려 그 중 절반에 가까운 5만여명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에 비하면 교회 법정에서의 종교재판은 그 잔혹함이 훨씬 덜하다.
「종교재판」(Inquisition)이라는 용어는 이단을 판결하는 권한을 지닌 교황청 대표단이 주관하는 일단의 교회법정에 사용됐었다. 최초의 종교재판이 열린 것은 교황 그레고리 9세(1227∼1241) 때로 이것이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독립적인 기관으로 설치됐다.
특히 13세기와 14세기에 중세의 이단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활발하게 이뤄졌고 15세기에 들어와서는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16세기와 17세기에 접어들어 다시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고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첫 10년 동안을 거치면서 없어지기 시작해 1834년 스페인에서 마지막 종교재판 법정이 폐쇄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연구 보고서가 발표되는 날 특별 메시지를 보내, 가톨릭 교회가 역사 안에서 교회의 자녀들이 범한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청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동시에 『용서를 청하기 앞서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어떤 잘못을 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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